군종신부시절 성탄판공을 하기위해 성체를 가슴에 모시고 최전방 철책을 밤새 헉헉대며 오르내리다 보면 이것이 소위 신부의 사명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밤중에 산길을 5~6시간씩 헤매었으나 고백성사 영성체를 한 사람은 고작 10명내외뿐. 그러나 그것이 그토록 자신을 기쁘고 대견스럽게 만들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병사는 신부가 주고간 껌 한통에 더 큰 기쁨을 가졌을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탄광신부」로 부임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40~50여차례 갱속을 드나들었지만 갱속에서 고백성사를본 사람은 겨우 두사람뿐. 그러나 그것이 「탄광신부」로서의 보람과 긍지가 될줄이야, 나이 몇살안된 젊은신부요, 활활 끌어오르는 정열과 자존심은 살아있어 때로 보이지않는 곳, 알아주지않는 곳. 교육과 문화의 빈민굴인 탄광촌에서 손과발이 되어 줄 일꾼이없어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지만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하여준 그 광부의 말을 기억할땐 왠지 으시대고 싶어진다.
안내자의 소개로 악수를 나누고 기도와 대화 후 돌아서는 나를 잡고 어떤 광부가 고백성사를 청했을때 당연히 사제가 해야 할 일이고 해오던 일이건만 생전 처음 듣는 소리처럼 당황했다. 나로 하여금 그 기억을 못잊게한 그 고백자의 첫마디 말은 『신부님 무덤속에서 고백성사를 보는 마음입니다』였다.
수천미터 갱 속에서 몇년만에 고백을 본다는 그 사람의 바로 그 표현이 수만번의 고백을 들어왔을 나에게 잊혀질 수 없는 가슴 메이는 말이 되어버렸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눈동자와 이빨만이 하얗게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머리에는 탄가루들이 쏟아지고있는 그 깊은 채탄막장에 묻혀 나는 탄가루에 범벅이된 그의 손과 그의 손에 있는 곡팽이를 꽉잡고 『오! 하느님, 여기에도 계시는 군요!』를 수없이 속으로 외쳐댔다.
갱속은 이른바「인생 막장」이라고는 하나 갱속을 이른바「무덤」이라 부르는 사람이 어디 그 한사람 뿐일까! 내가 죽으면 나의 뼛가루를 갱속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하고 싶도록, 내가 탄광에로 향한 연민의 정을 느끼고 「탄광 사제」로서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일깨워준 그 거룩한 삶의 고백자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어느 갱속에선가 한방울의 땀도 남길수 없는 심한 노동에 지쳐있을 그사람. 외로운 갱속에서 탄더미에 묻혀 죽어가는 동료들을 수없이 보아왔을 그 사람 마음 속에 아직도 하느님이 살아계셔서 위로를 주시니 더욱 잊지못할 것이다.
때때로 통회없는 마음으로 고백에 임하는 자의 고백을 들으면서, 또한 나 자신의 고백을 보다 순수하게 바치고픈 마음에서, 나는 그가 한 표현대로 무덤속의 고백성사를 자주 생각해 본다.
독자에게 버릇없는 말이되면 어떠랴.『그대여, 그대의 일터가 곧 그대의 무덤이 될지 모른다면 그대는 그곳에서 하던일을 계속 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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