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고정관념이 우리사회 깊숙이 만연되어 있다.
편견을 가지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미리 정해둔 생각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춘 후 자기주장을 펴기 때문에 남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경청하지 않는다. 이러한 편견은 서로가 불신하도록 만들며 심하면 감정적 대립이나 인신공격으로 발전하게 된다. 요즈음 지역감정이란 것도 이런 편견과 선입견이 많이 작용하고 있는 때문이다. 지난번 두 차례 선거를 치루면서 나타난 지역감정은 물론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야욕 때문에 이를 부추기고 이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일반대중에게까지 이 감정이 깊이 배여 있는 것이 사실로서 드러났다. 어느 지방 출신이라 하면 아예 불신하거나 피해버리는 것이 예사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 결혼상대를 고를 적에도 출신신분이 흠이 되어 결혼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당사자의 인품이나 능력보다도 가문과 출신을 깊이 고려해야하는 습관도 하나의 편견이며 선입견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순수해야할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이 때문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뜻 어용교수라 이름 붙여 내쫓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또 이런 학생들에게는 운동권학생이라고 점을 찍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노사관계는 더욱 불편하다. 노동운동에 앞장서는 직원은 회사를 망칠 사람으로, 사장은 근로자를 착취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는 사람으로 미리 정해놓고 서로 불신한다. 자기 집 주위에 장애자들이 이사 와서 살아도 안 되고 그들과 상종하는 아이들은 꾸지람을 듣게 된다. 이력서에 전과자라는 기록이 나타나면 그가 아무리 회개하고 죄 값을 치루었다고 해도 불신을 당하고 결국 사회에 복귀하여 정상적 생활을 하기 어렵게 된다.
지난 5월 어떤 종합병원에서 입원환자가 원인 모르게 갑자기 죽은 사고가 발생했다. 그 환자의 가족들이 병원에 대거 몰려와 심한 항의소동을 벌였다. 이때 어느 신문기자는 그 환자가족들의 말만 듣고 그것을 그대로 신문에 게제 했다. 병원측이나 담당의사의 설명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또 최근 경북선산에서 골프장건설문제를 놓고 주민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을 즈음 이를 조사하기 위해 어느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내려와서는 골프장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말만 청취하고 그냥 서울로 올라가버렸다. 이제 자기들 할일은 끝난 것이고 국회에 나가 목청을 높일 자료는 모두 챙긴 셈이다. 그와 다른 의견들은 아예 들을 필요도 없고 쓸모도 없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편견이요 고종관념이며 공정하게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얼마 전 TV심야토론에서는「민주화과정에 있어서의 이념」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밤잠을 설쳐가며 TV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배움보다는 더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몇몇 토론자는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감정적 발언과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지성인들이요 학자들이다. 그러나 객관성을 결여한 발언이나 저 사람은 저런 과거를 가졌으니까 이렇게 주장하겠지 하고 매도한 것은 점잖지 못했다.
몸소 민주의의 모범을 보여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는 아닌 것이다.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거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변명해서도 안 될 일이다. 대화나 토론은 자기생각을 문제 삼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부족한 견문을 넓힐 마음도 있어야한다. 예컨대 어떤 고고학자가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이 자기 이론에 맞지 않는다 해서 남몰래 다시 땅속에 묻어버린다면 학자로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선입견이나 편견은 진리를 지나쳐버리게 된다.
성경에는 현시자 발람과 자기당나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발람이 나귀를 타고 가는데 야훼의 천사가 길을 막고 서있었다. 나귀는 천사를 알아보고 길을 비켜주었으나 발람은 천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귀가 제대로 가지 않는다고 매로 때렸다(신명기 22장). 나귀가 발람보다 더 나았다. 편견을 가진 사람보다는 차라리 당나귀가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아듣는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사야서 시작에는『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백성은 철없이 구는 구나』(이사야1장3절)라고 했다. 그래서 성탄절 구유에는 소나 나귀를 세워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입장에서 보고 개구리처럼 모든 것을 바라본다.
소나 나귀보다 더 바보스럽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식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은 넓게 볼 수가 없다. 정직하게 진리를 찾겠다는 마음이 아쉽다. 필요한 경우 자기생각을 고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만이 정신적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상종한다면 일방적 생각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토론이 끝난 후에도 역시 전과 똑 같은 생각을 갖고 헤어진다면 아마 개구리들을 모아놓고 토론한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각자가 자기의 편협한 생각과 고정관념에서 사건들을 바라본 것 이다. 여기에 참다운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화합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때이다. 우리들도 추석명절을 맞아 그리운 가족, 친지들과 함께 정다운 시간을 나눌 것이다.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감정적 대립도 말끔히 씻어버리자. 그리고 마음을 넓게 열어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받아드렸으면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평소 우리가 바라는 참다운 민주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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