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식행사에서 원로교수 한분이『나는 민주주의를 싫어한다』는 폭탄선언(?)을하고 나섰다. 듣고 있던 모든 분들이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으로、좌ㆍ우로 갈리는 논쟁으로 시끄러워진 요즈음 또 한분의 좌익교수를 만나고 있는게 아닌가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분의 열정에 찬 연설을 듣고는 좌중이 모두 큰 감동을 받았었다.
『나는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반대한다. 선생과 제자를 갈라놓기만 하는 민주주의라면 나는 그런 건 싫다. 노동자와 사용자를 구별하고 서로가 맞서게만 하는 것이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나는 반대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민주주의、계층과 세대간에、이웃과 이웃 간에 서로를 구분 짓고 갈라놓는 민주주의라면 나는 체질적으로 그것이 싫을 수밖에 없다. 선생은 물러가라! 사장은 물러가라! 뜻 맞지 않는 사람은 보기 싫다! 이렇게 소리치는 민주주의라면 나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다. 나는 아무런 종교도 믿어보지 못하였지만 신앙의 본질은 사랑ㆍ자비ㆍ어짐 같은 것인 줄로 알고 있다.
그러한 용서와 화해를 바탕에 깔고 따뜻한 마음과 마음으로 인간을 묶어주고 감싸주고 하나 되게 하여 주어 인간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본질일 텐데 어찌하여 오늘의 종교는 제 가슴 치는 성찰은 생략하고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고 이빨 드러내 갈아 부치고 잘잘못을 파헤쳐서 발기발기 드러내고 갈갈이 찢어발기는 그런 세상을 만든단 말인가!』
뭐 대강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좀 지나치게 몰아부친 점도 없지 않고 논리의 비약이 심한점도 없지 않았지만 어째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다. 이제 경위만 따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지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주장하고、따지고 밝히고 하다 보니 단정 짓고、구별하고、단죄하기에 이르고 말지 않았는가. 사랑을 외쳐야 할 성직자가 단죄를 부르짖을 수밖에 없게 되고、속죄를 조용히 가르쳐야할 수도자가 길거리 첫 모퉁이에서 주먹 쥐고 남을 향해 찢어발기는 소리를 지르게도 되었다.
가정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잘잘못을 일일이 밝혀 손꼽아 세어야만 되었고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비겁함에 역겨워 어른을 몰아 부치고 부모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이 아침 글을 쓰면서 아내에게 한 여러 가지 잘못에 대해서 구구하게 설명을 해야 이해를 받게 될 것이고 아이들이 따지고 들 때 변명할 말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 이다.
혹시라도 이 풍진 세상을 성당에서 가로막고 나서서 덮어주고 쓰다듬어주고 감싸주고 용서해주자는 사랑을 좀 더 힘 있게 가르칠 수는 없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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