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넋고개까지 가자면 줄달음질을 치다가 숨이 차 쉬고, 또 달음박질 치고 이렇게 서너 번은 해야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칠판을 닦고 마룻바닥을 쓸면서도 넋고개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내가 오기를 기다릴 누나를 그리니 재수의 마음은 학교와 넋고개를 쉴새없이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읍니다.
「아이 하필이면 오늘 청소 당번일 게 뭐람」재수는 청소를 하다 말고 넋고개 쪽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무리 버버리라도 우리 누난데…」
『애슈야! 하고에 가머 나보으 누나라고 아지마』(재수야 학교에 가면 나보고 누나라고 하지마)하고 잘 안되는 말을 떠듬떠듬하지만 재수는 누나의 말을 다 알아 듣습니다.
『알았어. 내가 왜 창피하게 누나라고 해. 학교가면 내 근처에는 오지도 말란 말야』
그렇지만 누나는 재수의 책가방이며 도시락 같은 걸 꼼꼼히 챙겨주고는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보기 부끄러워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학교에서 끝나면 꼭 넋고개에서 재수를 기다립니다.
공부가 파하기가 무섭게 축구시합을 하느라 어떤 때는 동무들과 노느라 늘 늦게 가지만 꼭꼭 기다리는 누나였읍니다.
넋고개 바위에 걸터앉으면 학교까지의 길이 환히 내려다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쯤 오면 마을 아이들밖에 지나가지 않아 재수가 덜 창피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입니다.
코피를 흘리며「앙앙」우는 누나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삼삼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둘째 시간을 마치고 변소에 갈 때였읍니다. 변소 뒤쪽에 아이들 한무더기가 둘러서서 무엇을 구경하고 있었읍니다.
재수도 무언가 궁금히 여기고,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읍니다.
『앗?』
재수는 깜짝 놀라 움찔했읍니다.
『이 버버리야, 너 같은 건 실컷 맞아야 해』
1학년밖에 안돼 보이는 꼬마들 셋이 누나를 정신없이 때리고 있었읍니다.
「어서 말려야지」하고 재수가 몇 발짝 앞으로 나갈때었읍니다.
『벙어리는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모두 벙어리지』
한 아이가 머리채를 끄들며 말했읍니다. 재수는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읍니다. 그렇게 맞고 있으면서도 몇 발짝 앞에 나선 재수를 본 누나는 손을 내저으며 재수를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시늉을 했읍니다.
재수는 앞에 나가 누나를 말릴 용기가 슬그머니 없어졌읍니다.
다행히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가 싸움을 말렸읍니다. 재수는 아이들 틈에 있다가 얼른 뒤꽁무니를 빼 교실로 왔읍니다.
교실에 왔지만 마음이 콩닥거려 앉아 있을 수가 없었읍니다. 재수는 오로지 끝나는 종이 칠 때만을 기다렸읍니다. 칠판 글씨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선생님 말씀도 「앵앵」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재수는 셋째 시간이 끝나자마자 얼른 이층 누나네 교실로 갔읍니다. 누나네 선생님은 종소리를 못 들었는지 칠판에 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읍니다.
콧구멍에 솜을 틀어막은 누나는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어 마음이 놓였읍니다.
재수는 청소를 끝내고 부지런히 넋고개를 향해 뛰었읍니다.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재수가 넋고개 가까이 뛰어갔을 때였읍니다.
『와와 아아!』
누나의 소리가 났읍니다.
재수는 반가와 책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누-나』
하고 큰소리로 불렀읍니다. 누나도 재수에게 손을 흔들었읍니다.
『누나 아프지 않아?』
『앙 아파』(안 아파)
누나는 히죽 웃어 보이며 말했읍니다. 오른쪽 눈두덩이 시퍼렇게 붓고 코구멍에는 빨간 피가 밴 솜이 아직도 끼워져 있었읍니다.
『누나, 나 이제 학교에서도 누나라고 부를께. 그리고 누나 놀리지 않을께』
재수는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말했읍니다.
『그러자마. 애들이 너도 놀린단 말야. 벙어리 동생이라구』
누나는 떠듬떠듬거리며 말했읍니다.
『괜찮아. 벙어리 동생이면 어때, 나는 누나 동생인데. 그리고 누나는 꼭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누나』
누나는 눈물을 가득 담고는 고개를 끄덕였읍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읍니다.
『누나, 나 누나한테 잘못 많이 했어』
『잘못하긴? 참, 나하고 한가지 약속할게 있는데 지켜주겠니』
『그럼, 어서 말해봐』
『오늘 있었던 일, 절대로 집에 가서 말하지 마. 엄마가 나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 싫어』
재수는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읍니다.
『재수야 이것 먹어』
누나는 언제 땄는지 진달래꽃 한줌을 가방에서 꺼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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