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눈치가 조금만 이상한 듯하면 집안 살림을 부수고 마구 행패를 부렸습니다. 만사가 귀찮게만 여겨지고, 삶의 의욕을 잃어가면서 아내에게 함께 죽자고 권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저의 이러한 행동으로 해서 겪게 되는 고통을 참기 어려워 그때부터 성당을 찾았고, 두 아이와 함께 영세를 했습니다. 아내가 영세하면서 혼인성사를 해야 된다고 우겨서 마지못해 혼인성사도 받습니다.
이때부터 아내는 집안에서 믿음의 기둥역할을 시작하였습니다. 열심히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나의 마음을 바로잡아 보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냉담상태에서 헤어나질 못했고, 그럴수록 더 반대로만 나갔습니다. 주일날이면 아내가 함께 성당가자고 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토요일마다 밤낚시를 갔으며 아내가 영새 때 선물로 받은 손가락만한 야광 성인상을 가지고 가서 찌 대신 낚시 줄에 매달고 낚시질을 하다가 물속에 잃어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부대원들과 어울려 향락을 즐기고 겨울에는 차를 몰고 지리산 일대를 누비며 닥치는 대로 사냥을 했습니다. 금기고 불법이고 가리지를 않았습니다. 사탄의 올가미에 단단히 걸려들고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무질서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을 때, 저에게는 환란(患難)이 밀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대 운전병이 한밤중에 만취가 되어 차를 몰다가 진주남강 다리위에서 사람을 치어 죽게했습니다. 이 사고의 뒤처리가 겨우 마무리 지어져 갈 무렵 사냥을 나갔다가 차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공군대학에 입교해야 될 시기에 다쳤기 때문에 입장이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병원에도 못 가고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두 아이가 한꺼번에 홍역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 돈이 없어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갈수도 없는 형편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울고 있는 아내를 보고 저는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여 모든 것이 꽉 막혀버린 듯한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만사가 귀찮게만 여겨지고 「죽어버리겠다」는 현실도피의 단순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집에 있던 미제 수면제「쎄코날」을 한 병 주머니에 넣고 저녁 해질 무렵에 공군의 정장 차림으로 진주로 나갔습니다. 어느 여관에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써놓고 아무미련도, 애착도, 또 죄책감도 없이 치사량이 훨씬 넘는 약을 다 먹고 혼수상태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관 종업원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들려가 살아났습니다. 대구 공군병원에 옮겨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누운 제겐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 원망스럽기만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찢어지는 듯한 마음의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사천에 남아있는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생각할 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기도하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울하고 적막한 병원생활 속에서 저는 다시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자주 병원을 방문해 주시던 수녀님과 저의 영세 대부님의 충고와 권고로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3개월 만에 병원에서 나와 공군본부로 오자 바로 공군대학에 입학하게 된 저는 새로운 생활의 출발로 삶의 활력을 얻기로 결심하여 전역신청을 냈고 10개월 후에 군복을 벗었습니다.
새로운 삶,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전역한 저는 처가 가까이에 가게를 차렸습니다. 아무 경험도 없는 장사였지만 열심히 성실하게 운영하다보니 잘 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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