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의 본향, 추로지향이라 불리는 이곳 안동에 교구가 설정 된지 20여년이 되었다. 많은 걱정 속에 유림과의 마찰이나 갈등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보수적인 이곳 풍토에 어떻게 적응할까 연구도 많이 해야 했다. 우선 유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어느 노인에게 부탁해서 「유학자가 본 가톨릭」이란 주제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는 도리(道理)와 존천리(存天理)의 유학 핵심을 힘주어 이야기하던 그분도 이젠 이세상사람이 아니다. 그도 역시 하느님 대전에 갔을 것이고 또 그 같은 이야기를 그곳에서 도 하고 있을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무섭게 바뀌어가는 요즈음, 아직도 그분의 말씀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떠올라 기억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고, 또한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때 그분은 유교의 도덕율을 가톨릭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방법으로 강의를 했었는데 맡겨진 주제의 미묘함을 참 지혜롭게 말씀해 주셨던 것 같다. 그분은 「백무송열」(栢茂松悅)이라는 넉자를 흑판에 적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잣나무가 무성해지면 그 옆에 있는 소나무가 즐거워한다」는 말이라 했다. 그분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지만 난 이 이야기를 공동체(共同體)신앙관으로 해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20여년이 지난 요즈음 우리는 이웃과 함께 하고 있다.
이웃 농민형제들을 감싸 안고 농민들의 공동선을 위해 일하고 있고, 내가 일하고 있는 문화회관도 역시 시민들의 공동편의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신자와 비신자로 굳이 구별하던 옛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많이 변한 세상이다.
이제는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고 양심선언을 옹호하고 그의 편에 나서기도 하였으며, 숫제 수도적 삶을 이웃의 아픈터에 자리 잡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20년 전 그분의 가르침이었고 오늘을 꿰뚫어 보는 그분의 혜안이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맞게 되는 20여년 뒷날을 생각해보자! 성당에 밀어닥치는 예비신자들을 합동예절로 입교시킨 그 결과는 어떨 것이며 현실문제에 쫓긴 오늘에 대해 그때도 똑같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생각하고 생각해볼 일이다.
내일도 내다보지 못하는 처지에 어떻게 20년 앞을 내다본단 말인가 하고 되물어 보게 되지만 그래도 대답은 「준비하고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무송열(栢茂松悅)의 뜻을 가슴에 담고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 위해선 지금부터 교회의 문을 활짝 열고 이웃을 맞아들이자! 아니, 그냥 맞아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가 그들과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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