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학교에 있으면서 어느 주교님을 모시고 자주 회의를 갖게 되었을 때에 받은 인상을 되새겨 본다.
어느날 주교님께서 신학교에 오시는데 종로5가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하시고 그곳에서부터는 시내버스가 아니면 걸어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교님, 자가용차로 오시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하십니까? 불편하지 않으세요?』하고 말씀을 드리니『지하철이 더 편하지요. 도로가 복잡하기 때문에 자가용차는 불편합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는 교우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교우들 만나면 그들과 단순하고 소박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어 좋아요. 어느 교우는 미국사람도 밥을 먹고 사느냐, 주교님 나이가 몇이시냐 부모님이 살아 계시느냐, 형제들은 있느냐는 등등의 간단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 저들이 우리 교우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 반갑고 기뻐요. 자가용차를 타고 다니면 우리교우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가 어렵지요』하고 말씀하셨던 것을 잊을 수 없음은 주교님에게서 주님의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우연히 주교님의 방을 구경하게 되었다. 방도 좁지만 신장이 6척이나 되는 주교님에게 맞는 침대를 구입할 수가 없어서 짧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을 알아차리고 『침대가 짧지 않습니까?』고 물으니 『짧지요. 발이 밖으로 나오는 때가 많은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괜찮아요』하고 답변을 하시는 것이었다.
주교님께서 가난하게 사시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 주시지마는 복음적 가난과 사랑을 설교조로 상조하시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더욱 감격했다.
대개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석유 한 방울도 안나오는데 어떻게 자가용차를 혼자타고 세자리 네자리를 비워 가지고 다니느냐, 우리 모두는 근검절약하여 가난한 학생을 도와주고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등 이론으로 설교를 늘어놓기가 일쑤이며 나아가서는 고급으로 살면서 실천도 없이 거창한 사랑을 부르짖고 정의와 평화를 내세우는 것이 일쑤인 이때. 주교님께서 행동으로 실천하고 계심을 보고 세상의 소금과 빛을 보는듯하여 흐뭇하였다.
나 자신이 부강국에서 가난한 나라에 오시어 서민적으로 살고 계시는 주교님을 따라 간다는 것은 발벗고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에게 자가용차가 없는 것은 겁이 많아서 운전을 못 배우기 때문이고 완행버스(시내버스)를 잘 타는 것은 직행버스의 정류소가 더 멀리 있어서 그곳까지 걸어가기가 귀찮은 때문이다. 때로는 자가용차가 없어도 여행을 편리하게 할 수 있을만큼 교통이 발달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곤 한다.
필자는 가난의 정신이 아니고 편리함 때문에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때가있다. 버스 안에서 교우들을 자주 만나게 될 때면 지하철을 잘 타시는 주교님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교우들을 먼저 알아보기 전에 교우들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기가 일쑤이다. 주일날 성당에서 많은 교우들과 함께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더 반갑고 친밀감을 느끼게하는 이유는 뻔한 것이다. 본명도 물어보고 가능하면 가정형편도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고장은 밤과 감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가을철에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무거운 과일 부대를 두개씩 가지고 차에 오르는 아낙네들을 자주 보게된다.
무거운 과일 부대를 하나씩 싣다보면 운전수와 실랑이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운전수가 가외운임으로 내라는 액수는 별것 아닌데도 값싼 과일장수에게는 부담이 가는 것 같다. 내라 못낸다 싸다 비싸다하고 실랑이하는 것을 볼 때 서민들의 고달픈 생활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한푼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이유는 농촌의 가난한 가정에도 자녀가 있고 가르쳐야 할 학생이 있기 때문이리라. 서민들의 고달프고 애달픈 사정을 한 눈으로 보게될 때 감 부대를 사볼까하여 『그 감 팔거지유. 얼마유?』하고 묻는 내 말에 『안 팔아유-』하고 대꾸하는 그네들. 왜 팔지 않겠다고 하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서 풀 수가 없다.
세계 최대의 부강국에서 나서 복잡하고 가난한 우리나라에 오시어 지하철을 즐겨 타고 다니시며 서민들과 소박한 대화를 나누시곤 하는 주교님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에 오시면 무슨 차를 즐겨 타시고 어떤 대화를 나누실까하고 생각해 보는 때도 있다. 지하철을 타고 백리길을 오시는 그 주교님께서는 회의시간에 단 한번도 늦으신 적이 없었다.
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세리들과 죄녀들과 사귀고 함께 식사까지 하시게 되었을 때 바리사이파 사람들 죽 유지급의 신자들로 부터 비판을 받으셨다는 말씀이 있다. 어떤 때 부강국에서 복음 선포를 위하여 이 나라에 오시어 서민적으로 생활하시는 주교님께서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한편 생각하면 점점 편리해져 가는 세상에서 세속주의에 물든 사람들로부터는 불만을 사게하는 분이 복음적으로 사는 분이며 그리스도의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는 분이 아닌가하고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나 자신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망정 다른 분들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은 우리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가난하고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을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권영규 교수ㆍ서정수 교수ㆍ조철현 신부ㆍ박완서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변갑선 신부(공주 중동본당 주임) 이주영 교수(충남대 경제학과) 이흥록(변호사) 정양모 신부(서강대 교수) 順으로 집필해 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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