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올림픽 때, 조선조 5백년이래의 도읍지였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서울은 졸지에 쎄울이 되고 말았다. 서울을 s-eoul로 적는 것은「서울」이란원 발음에 가깝게 하고자한 우리의 표기수단인데 이를 일부 서양 사람들이 쎄울이라고 한다고 해서 서울의 주인인 우리가 덩달아 쎄울 쎄울 하는 것은 지극히 부끄럽고도 한심스러운 일이었다. 올림픽 주경기장의 장내 아나운서는 유창(?)하게도 서양말 방송 속에 쎄울이라고 번번이 발음했던 것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쎄울이 아니고 서울이라고 옳게 가르쳐 주어야지, 남 따라서 쎄울이 무엇인가 쎄울이. 한 번도 아니고 끝까지 그런 식의 엉터리 발음을 하도록 내버려둔 당국자에게 먼저 항의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자급의 그러한 속없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지금 전 국민들의 머리 속에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잘못된 생각을 부채질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은 5백 42돌 한글날이었다. 해마다 한글날이면 신문에 한글의 우수성을 양념같이 기사화하고, TV도 정부기관의 간단한 기념식을 방영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것이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정말 우리국민들의 잘못된 언어생활을 돌이켜 보게 하고, 또 잘못된 언어생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빚는가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올림픽 공식 무엇 무엇 하는 물건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런 것은 올림픽과 함께 공식성이 끝났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공식말과 글인 한글과 배달말은 그 공식성이 영원한 것 이다. 따라서 우리의 말과 글의 문제는 관심 있는 어떤 단체나 몇몇 사람들에게만 책임 지워질 문제가 아니고 온 국민이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 매체이다.
그러나 우리언론, 특히 전파매체는 평소에 국어순화보다는 국어의 혼탁과 오염에 한몫을 해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70년대에 정부 고위당국자가 국어순화문제를 한마디 하자 언론은 물론, 관청이나 교육기관 등 온나라가 이 문제에 대하여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얼마 뒤 또 그 고위당국자가 자연보호를 말하자 이번에는 국어순화가 쑥 들어가 버린 대신 자연보호 문제가 또 세상을 한동안 시끄럽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올림픽이 유치되자 또 올림픽 문제만 가지고 내내 떠들어온 바람에 지금 국어순화나 자연보호가 어떻게 되어있는가. 국가의 중대사가 무슨 유행처럼 매양 이렇게 단시성내지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아서야 되겠는가.
무릇 그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얼을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말 속에는 프랑스정신이 배어있고, 독일말속에는 독일 민족혼이 스며있으며 일본말속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대화 혼이 들어있다. 그 민족의 말이 빛을 잃으면 그 민족 또한 사라지고 마는데, 그 보기가 만주 말과 그 만주족의 운명이다 즉,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하려다 그 말이 먼저 중국어에 동화되어버렸고, 그러다 만주족마저 지금 희미해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그 나라의 말이 오염 된는 것은 그 민족정신이 병들게 된다는 뜻이다. 민족정신이 병들면 그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1977년 정부차원의 국어순화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여 지금도 거국적인 사업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말속에 스며든 외국어, 특히 미국식 영어를 프랑스에서 몰아냄으로써 프랑스 말을 정화하고 나아가서는 프랑스국민정신을 승화시켜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그들의 집념과 의지가 나타나 있는 것이 이른바 프랑스의 프랑구레 운동이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도 그들의 어문정책이 얼마나 철저하고 적극적인지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올림픽을 끝낸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태산같이 많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혼탁해져버린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이켜 보고 이를 정화해가는 국어순화운동이야말로 보다 시급한 국가적 파업임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오염된 한강을 우리는 우리의 슬기와 의지로 정화시켰다. 그런데 한강의 오염 한강에 사는 물고기의 등이 휘어진 것은 가시적이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나 우리말의오염, 그로인한 국민정신이 병들고 있는 것은 쉽게 눈에 뜨이지가 않아서 예사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먼저 TV나 라디오의 방송프로 명칭부터 순화하자고 말하고 싶다.
쇼 비디오자키, 코미디 하이웨이, 립 타이드, 미니 시리즈 드라마게임, 텔레폰 퀴즈, 클래식 살롱, 팝스 투나잇 모닝쇼…이외에도 일일이 들 수 없는 외래어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많은데 하루빨리 이를 우리말로 고쳐야 한다. 이러한 말들이 국제화 선진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을 것이다. 잡지의 이름에도 이런 외래어는 수두룩하다. 우먼센스, 영 레이디… 그리고 TV나 신문 잡지의 광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무지 내가 한국 속에 살고 있기나 한지 두려운 느낌마저 들게 된다.「캐주얼풍의 타운웨어가 그려내는 쓰리 실루엣」이건 여성잡지에 난 어떤 옷의 광고문인데 이것은 비근한 보기이고약과에 지나지 않는다. 선전도 외래어, 상품명도 외래어, 상품을 파는 가게이름도 외래어 그래서 구라파풍 서구풍이 아니면 맥을 못 쓰게 되어버렸다. 내가 살고있는 부산의 어느 번화가, 선 자리에 서둘러 본 찻집의 간판만 보기를 들면 이러하다. 밀라노, 헬리우스, 쎄시봉, 엘리시온, 무랑루즈, 돈호세, 포인트 필그린, 꼬망스망, 찻집의 이름만도 이러하니 다른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호텔이름, 아파트 이름, 식당이름 이런 모든 것들이 값비싼 고급일수록 서양말 일색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심지어 한복 점에도 이태리 한복점이 있고, 약탕기에도 피죤 약탕기가 있으니 어떻게 된 셈인가.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언어생활을 너무 멋대로 해왔다는 것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천주교용어도 토착화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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