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썩는 냄새 때문이다. 온통 세상이 썩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내 코에 축농증이 생겨 내게만 그런 냄새가 나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냄새가 난단다. 세월이 약이라니 시간이 지나면 면역성이 생겨 괜찮을 것이라고 자위해 보나 면역의 속도보다 썩는 속도가 더 빠른지 여전히 냄새가 난다. 거기에다 대도시엔 최루가스까지 뿌려 놓으니 말이다.
왜 세상이 썩어갈까?
인구 4천만 중에 줄잡아 1천만명은 소금이 되라는 하느님으로부터의 명령을 받았고 또 소금이 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물 세동이에 하얀 소금 한동이를 섞는다면 그 물이 썩을 턱이 없는데 말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었는가. 또는 모양은 소금처럼 생겼으되 소금이 아니 미원가루였나 흰 모래였나? 밤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붉은 십자가가 소금산의 존재를 널리 알려주고 있고 일요일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인파를 이루어 하느님의 집을 찾아 모여들고 있다. 찬양의 노래 소리 드높고 사람들이 몇몇이만 모여도 천상의 일들을 얘기하며 때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데 열이나 있어 흥분하고 있는 사람까지도 많다. 그런데 왜 이 나라에는 비리와 부정, 불공평과 심리적 억압, 거짓말과 불신, 인간 존엄성의 파괴와 무자비가 고개를 수그러뜨리질 않고 있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솔직 담백한 인간관계가 아쉬운 것은 웬일인가? 물건을 사려해도 조심해야 되고 관청에 가서 무슨 허락을 받으려 해도 이권이 딸린 일이라면 우선은 안된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되고 심지어 아이들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주셔도 전화의 진의를 파악하기에는 능숙한 세상사 돌아가는 직관력이 필요하다 한다.
일언이 폐지하여 눈치학 공부가 우선해야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고 쑥맥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한다. 눈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은 옛날 육이오 전의 얘기요 요즈음은 눈을 부릅떠도 아차하는 순간에 코가 베어진다고들 한다. 왜 그런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아름다운 선율에 맞춘 이 간절한 기도를 우리들은 하고 있는데 말이다. 천상의 일이 곧 지상의 일일진대 교회안의, 또는 신자들 모임 안에 하느님의 뜻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세상의 일에는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만일에 하느님 사업과 세상사가 따로 있다면, 예를 들어 매일의 기도, 미사참례, 교회의 각종 모임 참석, 교회헌금, 전교방문, 상가 방문 등은 하늘의 일에 속하는 것이고, 강단에 서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 쌀장사나 가구장사, 판단절재하여 주는 일, 환자 고쳐주는 일, 변호하여 주는 일, 부동산중개, 정치하는 일, 가사에 힘쓰는 일 등은 모두가 세상의 일들이어서 이 두가지의 일들이 구별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신자 생활하기에 편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저울을 들고 한쪽 바구니에는 천상의 일들을 얼마했나 담아놓고, 다른 한쪽 바구니에는 세상의 일들을 얼마나 요령있게 해서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많이 얻는가를 재어 보신다면 저울질 하시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세상사에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에도 능력이 있을터이니 말이다. 그들에게는 돈도 명예도 시간도 많을 터이니 말이다. 반대로 재주도 없고 받을 것도 없어 일용할 양식을 얻는데 급급해야 하는 사람들의 저울에는 양쪽 바구니에 담겨진 것이 별로 없으리라.
분명 그것은 아닌 것이다. 하느님의 저울대는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저울대는 큰 일이건 작은 일이든 간에 당신의 뜻에 따라서 세상일을 해나갔느냐를 따지신다. 얼마나 많이 했느냐를 보지 않으시고 어떻게 했느냐를 보신다. 「나의 행동을 보시지 마시고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나를 어여삐 보아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느님은 성교회 즉 하느님 백성들의 전체 모임을 판단하시지 않으시고 나 개인의 행동을 판단하신다. 즉 단체 입장 불가인 것이다. 세상에는 탈란트의 비유처럼 각각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러기에 능력있는 사람,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책임이 무겁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해서 판단하고 결정하느냐에 많은 사람들의 영육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 정치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경제인, 과학자, 언론인, 예술인들이 이들에 속한다. 이들의 삶, 행동, 특히 이들의 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영신적 내지 물질적인 행복과 평화를 얻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정치인 종교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들이 썩으면 구제불능의 사회가 되게 마련이다. 복음화를 사회의 복음화로 인식한다면 복음화는 이들의 열렬한 기도와 교회 활동에의 참여의 참뜻이 사실은 그들의 일상적인 직업 생활 안에 하느님의 잣대에 의해 증거될 때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 일 따로 있고 하느님의 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얘기는 소위 사회의 지도층에 속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고 뛰어다니는 보통 사람들이나 특히 가사를 돌보는 여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이다. 소금이 되라고 하였지 순간에 폭발하여 뜨거운 열을 내는 휘발유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녹아버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애와 효도로 가정의 평화를, 스스로 녹아버려 자기가 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양심을 지키려고 침묵 속에 노력할 때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따른다 생각할 것이고 따라서 이 사회에도 썩은 냄새가 가시고 그 분이 주신 그 고귀한 평화를 찾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짠맛을 내는 것인가를 알려고 하여야 하겠고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도 세상일이 하느님의 사업이 되게하는 잣대인 상황윤리를 가르쳐 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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