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아주 쬐끄만 난장이 꽃이 있었읍니다.
땅 속을 콕콕 찌르던 겨울이 지나가고 푸근한 봄이 오자 땅 속은 축축해졌읍니다. 그러자 키다리 씨앗과 난장이 씨앗은 뿌리를 내렸읍니다.
뿌리가 흙과 흙 사이를 이리저리 잘 헤치고 뻗자, 머리가 근질근질해지더니 아기 도깨비 뿔 같은게 솟았읍니다. 그리고는 흙을 뚫고 바깥으로 나갔읍니다.
겨우내 한 몸이다가 봄이 되자 하나는 땅속으로 자꾸 뻗고 다른 하나는 땅 바깥으로 뻗었던 것입니다.
키다리 꽃과 난장이 꽃, 이 둘은 땅 속에서는 아주 사이가 좋았는데, 머리에 뿔을 달고 바깥으로 나오면서부터 땅 속 뿌리는 뿌리대로, 새싹은 새싹대로 사이가 벌어졌읍니다.
『내 키가 이제 그만 컸으면…』키다리 꽃은 해님께 소원을 말하고,
『내 키가 어서 쑥쑥 자라게 해주셔요』난장이 꽃은 뿌리에게 조르지만 그들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읍니다.
처음에는 둘 다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은 키다리 꽃에게만 남아있고 난장이 꽃에게는 질투로 채워지기 시작했읍니다.
『흥 제 키가 크다고 웃사람들의 귀여움을 다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나비와 벌까지 앗아가… 나원참, 치사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난장이 꽃은 자기 머리 위에 키다리 꽃이 있는게 늘 불만이었읍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비켜 서 줄께』
키다리 꽃은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난장이 꽃을 맞았읍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난장이 꽃은 의기양양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다리 꽃 마음에 상처를 냈읍니다.
「아, 땅 속에 있을 때가 그립구나. 그때는 사이좋게 지냈는데. 내 키가 이렇게 커서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키다리 꽃은 키 큰게 정말이지 싫었읍니다.
키다리 꽃의 안타까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파리가 무성해졌읍니다. 그리고는 예쁜 꽃봉오리의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읍니다.
『아! 그 꽃 참 예쁘구나』꽃밭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들 키다리 꽃을 칭찬했읍니다.
키다리 꽃은 그게 무척 미안했읍니다.
난장이 꽃도 빨간 꽃봉오리를 가득 안았읍니다. 그러나 키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았읍니다. 그렇지만 낮에는 개미들이, 밤에는 풀벌레들이 난장이 꽃과 함께 했읍니다. 난장이 꽃은 이들에게 만족하지 않았읍니다.
『피이, 제가 뭐 그리 예뻐. 아이 속상해, 내가 저보다 몇 백배도 더 예쁜데 키다리한테 가려서 빛이 안 난단말야』
난장이 꽃은 투덜댔읍니다.
『아서라, 넌 키다리 꽃이 하루라도 없으면 햇볕에 말라 죽을거다. 너는 키다리 꽃 그늘에 있어야만 오래도록 살 수 있는거야』
바람이 난장이 꽃 이파리에서 그네를 타며 말했읍니다.
『얼씨구, 그런게 어딨어. 해님이 얼마나 좋은데 내가 말라죽어. 그리고 이게 뭐야 누구는 꽃 하나 핀 것 가지고 칭찬을 받고, 난 아무리 예쁜 꽃을 피워도 누구 하나봐 주는이가 없고』
난장이 꽃은 푸념을 늘어놓았읍니다.
『그런 생각 마라. 키다리 꽃이 아름다운건 네가 있기 때문이고, 너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키다리 꽃 때문이야. 다만 서로 가까이 있기에 그걸 모르는거야』
바람은 꽃잎들을 마구 흔들고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읍니다.
주인아저씨가 꽃밭에 물을 주며『꽃이 더 피기 전에, 비가 오면 키다리 꽃을 뒷 쪽으로 옮겨 주어야지』하고 말했읍니다.
『참 잘됐다』
키다리 꽃과 난장이 꽃은 서로 좋아했읍니다.
『이제야말로 내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겠구나』
난장이 꽃은 꿈에 부풀어 있었읍니다. 키다리 꽃은 키다리 꽃대로 묵은 짐을 벗어놓는 것 같아 아주 시원했읍니다. 날이 개고 햇볕이 쨍쨍 내려쬐자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키다리 꽃이 뒤에 서서 이파리로 햇빛을 가려줬었는데 키다리 꽃이 없어져 햇빛을 가려주는게 없기 때문이었읍니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자 난장이 꽃 이파리가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읍니다. 난장이 꽃은 햇빛을 피하려 발버둥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읍니다. 그 아름답던 꽃과 이파리들이 제 빛깔을 잃어 말이 아니게 추했읍니다.
『아-키다리 꽃이 내 옆으로 다시 왔으면…』
난장이 꽃은 목이 말라 헐떡이며 키다리 꽃을 생각했읍니다. 며칠 뒤 주인아저씨는 다 죽은 난장이 꽃을 호미로 파내어 꽃밭 가장자리로 던져버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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