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계발 프로그램 중에 장님놀이라는 것이 있다. 두명씩 한 조가 되어 한사람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장님의 역할을 하고 한사람은 인내자 역할을 하는 역할연기가 바로 그것이다. 피정이나 수련회에서 장님놀이를 했던 학생들은 한결같이「볼 수 있다는 것」의 고마움과 안내자의 중요성, 삶의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느낌을 털어놓는다.
「보고 싶다는 것」은 장님놀이 이상으로 우리 모두의 갈망이다. 복음서는 참삶을 보고 싶어 했던 또 다른「나」들을 소개해준다. 세리 자캐오 막달라 마리아, 중풍병자, 백인대장, 배반자, 베드로 등등. 성서가 이런 대목에서 보여주는 것은 고통과 기적이라는 양쪽 면이다.
절망과 고통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들은 오직 하느님께 매이기를 선택하고 비로소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인정하게 된다. 그 순간 기적은 일어나고 그는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예수를 가리켜「나의 주님」이라 힘 있게 외친다. 이때에야 비로소 고통은 은총이었음을 고백하며, 기적이란 다름 아닌 이 은총을 증거 할 용기를 갖게 되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된다.
고통이야말로 하느님을 참으로 하느님으로 만나게 해주는 성사(聖事)의 문지방이며, 더 이상 하느님을 자기 욕심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참다운 신앙에로의 초대라고 생각한다.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마치 자수(刺繡)의 뒷면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갖가지 색깔의 무수한 실들이 뒤섞여 있어서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최악의 고통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빛에 닿을 때 비로소 앞면의 아름다운 꽃무늬를 보게 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불행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그야말로 은총의 뒷모습이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 순간 어려움 앞에 괴로워하는 신앙인들에게 은총을 간구하면서 바오로 사도처럼 이렇게 기도드린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높고 길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