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정도 지난일이다. 고교 2년 재학 중에 조산원을 하는 외사촌 누이 집에서 하숙을 했다. 그런 연유로 인해 소파수술 후 적출물을 밤중에 살그머니 뒷산에 묻는 일은 주로 내가 맡아했다. 하루에도 몇 명의 임산부가 뒷문으로 들어와서 임신중절수술을 받고는 아픈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찌푸린 얼굴로 나서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다. 가방을 들고 이른 아침에 들른 여고생도 있고 20대, 30대, 40대주부까지도 다녀갔다. 모두가 원치 않는 생명의 잉태로 인하여 이를 인위적 수단에 호소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저녁엔 8개월째에 접어든 임산부가 낙태수술을 하러왔다. 통상20주이상의 태아 소파수술(dilatation & curettage)이 불가능하므로, 당연히 유도분만을 했는데 건강한 남아를 생산했다. 옥양목에 싸여 아랫목에 따뜻이 누여진 애의 울음소리가 우렁찼다. 나는 속으로「고놈 틀림없이 명줄이 긴 놈 일거야. 양자로 들어갈 자격이 있는 놈이다」하고 생각했다.
미숙아는 생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태어나자마자 곧 인큐베이터(incubator)에 넣어야 생존율이 높은 것인데 원체 부모가 버린 자식들이라 비싼 돈 들여 인큐베이터에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이틀정도 아랫목에 놓아두었다가 계속 살아있으면 생존가능이 있다고 보고 비로소 우유도 먹이고 암죽도 쑤어주어 생명을 유지시킨 후 양자입적을 원하는 양부모의 품에 넘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애는 적당히 울음을 그칠 때가 되었는데도 무한정 울어대는 것이었다. 아기의 아비되는 자가 와서 한동안 들여다보고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작별을 고하였다. 「양부모 만나서 잘 살아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애는 끊임없이 울어대었다 하도 시끄러워서 그 방에 들어가 봤더니 그 애는 빨간 얼굴에 고통스러운 빛을 띠면서 목이 잠긴 소리로 사뭇 발악을 하듯 계속 울고 있었다. 한쪽 눈을 벌써 뜨고서 허공을 들여다보며 악착스레 울고 있는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밤늦게 외출에서 돌아온 누나는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애가 죽은 것 같으니 준비하란다. 옷을 차려입고 가보니 애는 숨이 넘어가는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의 등과 엉덩이, 하지의 뒷부분, 발꿈치 등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
그제야 전후 사정을 알아차렸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웠던 것이다. 얇은 옥양목에 싸여서 아랫목에 따뜻이 보온한다는 것이 그만 연탄아궁이가 열려있어서, 기동력이 없는 신생아가 타서 죽고 만 것이다. 마지막 숨을 꼴깍 삼키고, 한차례 넌더리를 친 다음, 마침내 저녁 내내 받은 고통에서 해방되어 그 애는 짧은 생을 마치고 결국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죄책감 비슷한 기분에 할 말을 잊고 한참 있다가 통금 전에 사체처리를 하기위해 사체를 신문지에 단단히 싸서 묶은 후 뒷산에 올라가 벌벌 떨며 묻었다.
살수도 있을 아이를 과실에 의해 죽였다는 것은 썩 찜찜한 일이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으리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그 애 부모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사건은 참으로 비일비재한 일이다. 의학에 상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소파수술이 임신 어느 기간에도 가능하여 사산시켜 분만하는 줄로 알고 있으나, 이는 참으로 무지의 소치이다. 소위 낙태수술 즉 인공 임신중절 수술은 임신 15주까지만 안전하게 시술되며 16주~20주까지는 가능하지만 위험이 따르며, 20주이상은 유도분만즉 조기분만 술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만의 시기를 앞당겨서 출산하는 것이다. 굳게 닫혀있는 자궁 경부를「laminar-ia」라는 기구를 사용하여 억지로 벌리고, 이를 통해 소금물을 집어넣어 자궁체부를 팽창시키고, 진통이 시작되면 자궁 수축을 강하게 일으키는 약물을 근육 주사하여 분만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20주 이상 되는 아이는 생명이 있는 채로 분만되어 곧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는데, 부모가 버린 자식이므로 몇 분 또는 몇 십 분간 꼼지락 거리다가 죽게 된다. 수태기간이 길수록 분만 후 살아있는 시간이 길다. 15주이하의 태아들은 소파 수술에 의해 뱃속에서 이미 찢겨진 채로 나온다. 머리와 몸통이 각기 따로 분리되어 나온 개구리 같이 튀어나온 까만 눈을 보면 잔인한 짓이라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어떤 부모들은 9개월짜리도 낙태수술을 해달라고 오는데 이것은 곧 살인을 해달라고 오는 것과 진배없다.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에 보면 질병 등 특정한 경우에만 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비 특정한 경우 즉 단순히 양육이 곤란한 경우에도 중절수술을 하는 것을 묵인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살인을 방조함이 된다. 잉태된 생명이 비록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되어 있다하더라도 부모가 이를 임의로 처리함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거역하는 일이다.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지혜서 1, 13)『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라』(창세기2, 28)성경의 말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창조계획의 주역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인간생명을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제거하는 것은 하느님의 아버지 되심을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 된다. 천상 가정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불림 받은 하나의 생명이 단순히 양육문제 때문에 의사의 손에 의하여 사형선고를 받는다는 것은 종교이전의 양심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구 조절이라는 미명하에 위정자들이 묵인해 주고 있는 인공 임신중절수술은『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인간들이 공개적으로 깨는 일이 된다. 오늘날 한국에서 잠정 집계된 것 만해도 하루 5백명이 중절수술로 사망하며 비공식적 의료행위에 의해서 사라지는 생명까지 포함해서 한해 1백만명이 그런 식으로 죽는다고 한다.
신경계통이 발달되지 않은 태아는 소파수술의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반대로 갑자기 들이닥친 태아세계의 파괴는 통증이외의 또 다른 심한고통을 태아에게 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더구나 유도분만 후 적절한 치료 없이 냉장고 안에서 또는 수술실 구석이나 옥상 또는 지하실에서 고통스레 죽어가는 생명들의 고통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리오!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엄연한 생명체를 내팽개치는 행위는 엄청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생명은 그 수태된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해야한다. 낙태와 유아살해는 가증할 죄악이다』(사목헌장 51항)고 규정한다.
의학도들이 하는「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는『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순간부터 지상의 것으로 여기겠노라』라는 대목이 있고 이를 공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수입을 위해 이 수술을 자행하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unwanted pregnancy)이라 하더라도 주이지는 말고 출산 후 영아취급기관을 통하여 양부모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으니 태아살인만큼은 앞으로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산부 개개인의 말 못할 속사정도 딱한 일이기는 하나 의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현행 법률상으로도 엄연한 살해에 해당되는 중절 수술은 결코 중공이나 기타 미개국가처럼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20세기의 각종종교 신학적, 도덕적 죄악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태아살해는 말세의현상이 아닌가도 싶다.
쾌락의 결과인 원치않는 임신이 중절수술에 동의하는 방종한 피시술자나 시술자 모두가 살인의 공범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타협이 필요 없는 절대정의임으로 이를 어기는 것은 곧『죄』임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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