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중략)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며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중략)
에헤라 가다 못가면 쉬었다가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읽노라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뭉클한 것이 솟아오른다. 「장애」라는 낱말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지만 김남주 시인의 시「함께 가자 우리」는 장애우들의 아픔, 고달픈 삶의 조각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그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함께 가자 우리」는 두 눈과 입이 멀쩡하고 팔다리가 온전한 것만으로 정상인으로 자처하는 우리들에게 함께 사는 인간의길,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함께 사는 길은 바로 인간의 길이다. 최근 펼쳐진 장애우들의 올림픽, 제8회 서울장애자 올림픽을 바로 함께 살아야하는 인간의 길을 보여준 감동의 대제전이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안타깝고 눈물겹고 가슴이 뜨거워지던 현장, 대회 개회식, 가슴 뿌듯한 감격과 자랑스러움을 불러 일으켰던 각 경기장, 서로를 도우며 격려하던 선수촌 등등「서울장애자 올림픽」은「다함께」「굳세게」「끝까지」해보인 위대한 인간승리의 한마당이었다.
다소는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판정시비의 난장판도메달에 집착한 약물중독사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방자하기까지 하던 강대국 선수들의 입장식의 오만, 잘난체하며 거만 떨던 유명선수들의 역겨운 몸짓이 없어 참으로 좋았다. 물론 편견과 우월감을 앞세운 강대국들의 편파보도 감정보도도 없었고…
조용하게 치르다보니 국민의 반응역시 냉정하리만큼 올림픽이었다. 그들의 진지한 자세 앞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부끄러움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의 싱싱함과 신선함 용기와 패기 앞에 우리는 단지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긴 사람들이었다.
편견과 배타ㆍ소외와 무관심속에서도 그들이 펼쳐 보인 몸짓은 인간의 존엄, 그 경외감을 웅변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장애자 올림픽은 일단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바있지만 장애자올림픽은 우리의 현실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배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부당해야 하는 배움의 기회, 역시 같은 이유로 거절당해야 하는 취업, 아니 그보다 장애를 딛고 스스로 살고자하는 삶의 현장건립마저 주민들의 반대로 벽에 부딪쳐야하는 이 엄연한 현실을 장애자올림픽 개최의 장애요인으로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장애인의 뼈아픈 고통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마당에 올림픽개최는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아니라는 변명으로 도망갈 구석은 없다. 어디 한번 냉철히 현실을 보자. 우리의 모든 공공시설을 둘러보아도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불과 몇%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도 사회도 국민도 이들과 함께 살고자하는 의지가 도무지 없다.
교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성당의 높은 문턱들은 휠체어장애자들의 출입을 자연스럽게 제한해주고 있다. 고백성사를 볼 수 없어 안타깝다는 농아자의 호소도, 고백소의 좁은 문으로는 휠체어를 사용 못해 고백성사를 걸러야하는 척수장애자의 울분도 분명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나마 새 성당 건립에 척수장애자를 배려한 경사로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수년전에 불과하다.
엄연한 현실을 반영이나 하듯 장애자올림픽을 치루는 국민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매스컴 역시 장애자올림픽의 소외를 부채질한 장본인들이었다. 여러 개의 TV채널, 수많은 신문들은 장애인들의 의지의 현장들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도외시했다.
장애문제를 근본적으로 보고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일은 바로 우리 전 국민의 의식변화라 할 수 있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 개최된 장애자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얻어낼 수 있었던 값진 교육의 기회, 국민의식 개선의 기회는 이렇듯 어이없이 잃어버렸다. 「목발을 짚고」「휠체어에 앉아서」「두 눈을 감고」「귀를 막은 채」할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하나로 달리고 던지며 헤엄치는 그들의 모습은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대로 생생한 교육의 현장이었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국민의식교육의 기회를 우린 놓쳐버린 것이다.
장애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움직임이 장애자 올림픽과 더불어 일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고용촉진법 제정도 그중의 하나다. 장애인들의 취업을 법으로 묶어 보호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모든 근무처ㆍ작업장이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들이 마음 놓고 이용할 편의시설의 배려는 우리사회 모든 시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같은 과정 없이는 그 어떤 법률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시행될 리가 없다. 오히려 더 큰 아픔과 고통만을 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해야 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함께 걷고자하는 마음」이다. 그들과 내가 하나로 느껴질 때 취업거부ㆍ입학거부는 이미 우스운 낱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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