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교회는 우리들의 모든 노력과 관심을 한해 앞으로 다가온 제44회 서울 세계성체대회로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국 14개교구 7백 34개 분당과 기관ㆍ단체의 2백50만 신자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체성년의 해를 새로이 시작하였다.
동시에 전교의 달이자 로사리오 성월인 무진년시월을 모두들 손에 손에 묵주를 들고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원죄 없이 잉태 되신 성모님을 수호자로 모신 한국교회는 2백주년을 전후하여 교세의 약진과 팽창은 물론이려니와 은총 충만한 세월을 계속하여 살아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성업 195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3월25일에 개막하였던 구원의 특별성년, 작년 성신강림절부터 금년 성모승천 대축일까지 기쁨으로 보낸 성모성년, 그러고 지난 16일(일)부터 세계 성체대회 때까지 성체성년의 해를 살게된 것이다.
이 기쁘고 복된 시절에 우리는 또 한 번 뜻 깊은 날을 맞이하였다. 바로 대구의 투르드 성모동굴이 지난 13일(목)로 초대교구장 플로리아노 드망즈 안세화 주교님에 의해 완공 되고 축성 된지 만7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대구직할시 중구 남산3동2백25번지의1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경내에 불란서 루르드드의 성모동굴을 모상 한 이른바「성모당」이 우뚝 서있다.
사실 지나온 1백년 대구교회사와 더불어 성모당 70년 세월은 고난과 역정, 애환과 감동의 나날이었다. 필자역시 성모당 70년을 반추해볼 때 가슴 깊은 데서부터 뜨거운 감동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누리며 얻게 되는 것은 공연한 심사요 감상이라 할수 있을까.
안세화 주교님께서는 1911년 6월 26일 서상돈 아우구스띠노라는 분이 기증한「허허벌판의 대지위에 가난만을 갖고」맨 주먹으로 달려오신 것이다. 「새 교구」의 첫 감목으로 부임하신 안 주교님께서는「신뢰하고 일하라!」(Confide et Labora)라는 사목시정(司牧施政)을 정하사고 먼저 성모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셨다 동년 7월 2일 루르드의 성모님을 교구의 재정 관리를 맡아주실 분으로 정하시고 앞으로 10년 안에 주교관ㆍ신학교ㆍ주교좌성당 증축 등 교구가 필요로 하는 사업을 완성시켜 주시면 주교관 대지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에 루르드의 성모굴을 모상한 성모당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놀라웁게도 만 7년 3개월 11일만에 완공, 축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모당 전면에 허원년도(1911)와 허원성취ㆍ완공년도(1918)가 표시되어 있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허원의뜻으로(Ex Voto Immaculatae-Conceptioni)바쳐졌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특별히 1984년 2백주년을 맞이하여 교구에서는 안 주교님의 흉상과 유시문을 성모당 마당에 건립한바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구교구가 설정되고 안 주교님의 허원과 성모당 공사의 완공에 이르는 191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참으로 어수선하고 암울한 시대였다. 우리는 1910년 8월 28일 한일합방을 당하였고 1914년부터 1918년 까지 전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처절한 참화를 맛보아야 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파티마 성모발현이 있었는데 1917년 10월 13일 파티마 성모의 마지막 발현과「태양의 기적」이 있던 날로부터 꼭 1년 후 대구 성모당의 축성식을 가졌던 것이다.
이는 그 당시의 제반 정세와 여건으로 미루어볼 때 틀림없이 신비롭고 기적적인 일이었으며 초대 교구장 안 주교님의 태산이라도 움직일 듯한 크고 무거운 믿음과 노역이 아니고서는 성취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911년 교구설정이래 대구는 영ㆍ호남 일대를 포괄하는 남방교회의 모교회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시점을 두고 볼 때 교세 신장도나 재정부담 능력을 헤아린다면 결코 과거의 외형적 명성과 성가(聲價)를 그대로 누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구는 서울에 버금가는 큰 교회요 자칭 타칭「초석교구」「저력 있는 교구」가 되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1911년 7월 31일 성모당 대지공사를 시작으로 교구청일대는 주교관ㆍ신학교ㆍ수녀원ㆍ청년회관ㆍ남산성당ㆍ교회학교 등 가히 가톨릭 촌(村)을 형성하여왔던 것이다. 여기에 비례하여 1918년 성모굴이 완성되고 축성식을 가진 그날부터 대구 성모당에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연일 순례객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교구내의 크고 작은 모임과 행사가 자주 베풀어졌으며 그 가운데 미사와 성체공경 신심과 현양행사가 많았던 것이다. 역대 교구장 주교서품 경축행사ㆍ역대 교황사절과 대사의 환영식ㆍ성체대회 또는 한미합동 성체거동ㆍ어린이 기도날 행사ㆍ교구발전 특별주간 기도ㆍ레지오와 푸른군대 등 성모신심 단체의 기도와 행사ㆍ교회학교학생들과 대구시내 각 본당별 순회 성모의 밤 등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81년 5월4일에는 인도의 마더 데레사께서 다녀가셨고, 더욱이 84년 5월5일에는 교종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이곳을 찾으셨다. 또한 87년 1월21일 대구의순교자 이윤일 요한 성인의 순교 1백 20주년 당일에 성인께서 대구 교회의 제2수호자로 선포되고 성인의 성해가 성모당 제단아래 뫼셔진 가운데 매일 미사와 고백성사가 베풀어지고서는 1일평균 4백명이 넘는 신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근래에 들어 대구일대의 신자들뿐 아니라 멀리 제주도등지에서 때로는 외교인들까지도 즐겨 찾는 성지요 명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대구의 성모당은 지난 70년 세월동안 한결같이 이 나라 이 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함께하여 왔다. 왜정치하 신사 참배가 강요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던 시절이나 해방이후 6ㆍ25전란과 43년 대한민국의 영욕이 엇갈리는 세월을 묵묵히 함께 지켜왔던 것이다.
성모당의 성모님은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 되신 성모님이시고 또한 대구 교회의 수호자이산 루르드의 성모님이시다. 대구교회의 신심과 저력은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고 자랑이 되며 기쁨과 긍지가 되어야 하리라.
오늘도 오후3시가 되면 어김없이 많은 선자들이 대구의 성모당으로 모여들 것이다. 고백성사가 베풀어지고 미사가 계속되는 새로운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 주교님의 열망대로 이곳 성모당을 거쳐 간 수많은 신앙선각들의 굳건한 믿음의 토대위에 오늘의 성모당 순례자는 성체성년의 해를 더욱 뜨겁게 온 몸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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