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교회」란 외부의 탄압으로 인해 복음 선포와 신앙실천의 자유가 제한 또는 말살된 지역으로서 공산국가의 교회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북한 공산정권의 종교 탄압은 그 악랄함에 있어 가히 세계적이어서 북한의 교회는 「침묵으 교회」가운데서도 가장 어둡고 침침한 침묵의 교회라는 오명을 안고있다.
따라서 우리의 동족이며 형제자매를 「침묵의 교회」에 두고있는 한국교회가 「침묵의 교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무가 아닐 수 없다.
2백여년의 교회역사 가운데 절반을 박해에 시달린 한국교회는 모진 시련끝에 신교(信敎)의 자유를 획득했으나 교세확장의 기반을 채 다지기도전에 일제의 침략을 받았으며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자마자 곧장 남, 북
으로 갈라지는 조국분단의 아픔과 함께 이후 공산치하의 북한지역은 지금까지 「침묵의 교회」로 남아있다.
금년 6월 25일은 23번째로 맞이하는 「침묵의 교회」를 위한기도의 날이다. 주교회는 1965년 2월 정기총회에서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 특별히 북한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주교회의는 그해 6월 중순에 또 다시 열린 정기총회에서 제1회「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에 앞서 「침묵의 교회」를 위한 공식 기도문을 제정, 본격적인 기도운동에 착수했다.
한국교회가 북한「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이 뒤늦게 시작된 것은 남북분단후 빠른 시일내에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젖어있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겠으나 그보다는 우리의 열성과 기도가 부족했음을 자인치 않을수 없다.
우리가 북한「침묵의 교회」를 위해 기도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만큼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남북통일이 요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데서 절망하지 않고 타개해나가려는 의지력의 소산이라고 평가할수 있다.
1965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제정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국교회는 1980년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기념사업위원회 산하에 「북한선교부」를 두고 북한 교회를 위한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선교부」는 2백주년 기구해체에 따라 주교회의 직속 기구로 개편된후 북한선교의 기반을 조성하고 공산권 거주 동포에 대한 선교활동에 필요한 연구 활동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한편 대북선교방송, 재외 기구를 통한 연락, 홍보활동 등을 강화, 간접 선교활동을 전개하면서 북한 선교사업의 지속적ㆍ효율적 활동을 위한 북한선교후원회를 조직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북한 선교활동은 그 성격상 결코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인내와 기도로써 참고 노력해야 한다. 우선 6월 25일에 각 성당에서 봉헌되는 「남북통일 기원미사」에 동참하고 「북한선교후원회」에 가입하는 일부터 실천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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