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적 문제에 관하여 공동적인 토의나 사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집회라고 한다. 도로 기타 옥외장소를 행진하거나 플래카드ㆍ피켓, 또는 구호 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을 알리고 찬성을 얻고자 하는 것이 데모인데, 이를「움직이는 집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일 뿐 아니라 단체를 결성하는 것과 언론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국민의 의사표현과 여론형성의 수단이므로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제도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집회와 시위가 어떤 경우에는 범죄가 되어 처벌의 대상이 된다. 관계법률의 한 조항의 예를 들면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는 안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형법에서는 죄형 법정주의라고 하여 범죄로 처벌되는 행위는 남의 물건을 훔친다든가 사람을 때려서 상처를 낸다든가하는 따위와 같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는 것이다.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하는 말은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이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애매한 기준으로 헌법상의 권리인 집회시위를 범죄로 취급하여 처벌하려고 하니 문제인 것이다.
정부나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집회나 시위는 모두 범죄로 몰리게 되니 장관이나 당국이 불법집회라고 하면서 말려도, 많은 사람들이 듣지 않는 불복종 현상이 생기고 정부나 권력 쪽에서 주최하거나 그쪽 마음에 드는 집회는 연예인까지 동원하여 화려하게 행사를 치르는 등 불공평의 문제가 생긴다.
근래에 박종철군의 죽음을 둘러싸고 추도와 규탄, 직선 대통령제의 개헌주장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의 요구를 내세우고 여러 차례 집회가 시도되었으나 번번이 당국의 엄중 경고와 주최측의 행사강행, 전투경찰에 의한 원천봉쇄, 사전 연금 및 체포ㆍ투옥과 비난성명으로 얼룩지면서 악순환만 거듭하고 있다.
왜 이 모양인가? 어찌될 것인가? 과연 해결의 실마리는 없는가?
정당한 목적과 주장을 가지고 평화적인 집회를 한다는데 최루탄을 가지고 선제공격을 가하여 사람들을 쫓아 해산시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당치도 않거니와, 집회에 참석하려다 쫓긴 사람들이 시장입구나 백화점 앞 등 일반 시민과 섞여서 눈물 콧물을 훔치면서 앞을 가누지 못하는 판에 노인 아이 부녀자들이 옆에 있거나 말거나 마구 쏘아대니 정말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평화로운 도시거리에 밤낮으로 중무장한 전투경찰이 지켜 서있는 황량한 풍경을 언제까지 참고 살아야하나.
지난 6월 10일의 국민대회에 동원된 경찰병력이 6만명이나 된다고 하니 어느 국군병력의 10분의 1이 아닌가. 최루탄과 경찰로는 더 이상 안된다. 다른 해결방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있다는 것은 정부나 여당에 정치적으로 반대의견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자유롭게 정치적 주장을 토론, 선전할 수 있다는데 현실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진실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 소수야당이나 반대차의 집회나 시위가 국가질서 전체를 뒤흔들 규모가 양상으로 확대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반대자에게 모이도록 하라. 말하게 하라. 국민은 듣고 판단할 것이며 선거를 통해 선택할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통상적인 정치쟁점이 아니고 정치의 틀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대통령의 선출방식을 가지고 한쪽에서는 얼마 전까지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다가 『시간이 없다』『올림픽 후에 보자』고 하면서 현행 헌법대로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또 다른 쪽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면서 크게 대립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 강제해산, 범법자로 취급하는 구속 등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지금의 헌법을 만들 때 미처 예상 못했을런지 모르나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헌법조항이 있다.
대통령도 헌법개정안 제출권자로 되어있고 또 대통령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활용하여 차기 대통령 선출방식 내지 권력구조에 관하여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에게 물어보자.
민주주의 한다는 나라에서 정치지도자들이, 여야당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 문제에 대하여 타협과 합의를 얻지 못했을 때 최종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물어보는 절차를 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현재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아래서 정치여당이 선택할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최루탄이나 경찰 또는 투옥으로는 현시국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비화시킬 뿐이다.
현세질서를 복음화 하는데 앞장서야 할 사명을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뿌리내리는데 얼마나 합당한 노력과 헌신을 하였는지 모두 반성해 볼 때다. 또 이 나라에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제1의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직에 20년 가까이 종사하면서 무엇을 했는지, 장시간 노동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쌀 한톨이라도 땀 흘려 생산하면서 살아가는 농민들을 대할 때 부끄러움 없이 없는지 자문하면서 하루빨리 이 땅에 민주화의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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