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궁금하다. 하느님. 이 땅을 위해 당신이 마련하고 계신 계획이 무엇인지.우린 알고 싶습니다. 너무 자주 써먹다보니 이젠 조롱의 말로 들리기도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가야할 우리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우린 찾고 싶습니다. 외치기만하다 보니 정작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혼돈을 일으키는 참된 민주화의 길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하느님, 우린 당신의 크고 원대한 계획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더 큰 아픔과 희생이 필요한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참된 민주화를 위해, 우리가 건너야할 강은 또 얼마나 깊고 험한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이 모두 주제 넘는 말씀이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 이 시간, 이 나라가 연출하고 있는 아슬아슬한「곡예」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가슴이 한없는 아픔으로 찢어지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멈출새 없이 흘리는 땀과 눈물을 지켜보면서 당신이 마련하신 그「때」는 과연 언제쯤인가요.
하느님 당신도 이번에는 꽤나 눈물을 흘리셨을겝니다. 뾰족탑 마당을 향해 마구잡이로 쏘아대는「눈물탄」을 그 집의 주인이신 당신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짙게 맡으셨을 테니까요.
사실 처음, 젊은 그들이 두 손에 돌멩이와 화염병을 들고 명동성당을 찾았을 때 가슴은 철렁 소리내며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성당이, 기물이 파손되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얕은 소견이 먼저 고개를 쳐들었기 때문이지요.
과연 투석전은 시작됐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명동구내를 난무,「성역」이 무색해 지는듯했습니다. 당신도 물론 아시겠지요. 최루탄의 위력을…
쉴사이 없이 날아오는 최루탄 우리가 허리띠 졸라가며 바친 세금으로 만들어진 그 최루탄이 다시 우리를 향한 흉기로 날아오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칼한 경우인지요.
어쨌든 최루탄은 젊은이들을 잠재우기보다 오히려 자극하는 흥분제였습니다. 최루탄 파편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이한열군, 그를 통해 입증된 최악의 위험성도 젊은이들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날아드는 최루탄의 숫자가 어이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시민들의 반응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쏘지마,최루탄 쏘지마』
젊은이들의 과격시위에 우려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마저 어느덧 그들의 구호를 따라 외쳐 기도했습니다.「호헌철폐」「독재타도」.
하느님, 감히 당신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아무리 밉다한들, 아무리 다급하다한들 흉기나 마찬가지인 최루탄을 사람을 향해 직접 쏘아댈 수 있는지요. 폭력은, 물리적인 힘은 인간을 일시적으로 위축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그 마음까지 진압할 수는 분명 없었습니다.
폭력을 지독히도 싫어하시는 당신께서 이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엄청난 진리를 우린 최루탄을 통해 터득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극과 극의 대치상황은 하느님, 당신과의 만남 안에서 자연스럽게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제들의 기도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지요. 젊은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가운데 교회의 입장을 수용하는 가운데 교회의 입장을 설명하고 다시 정부당국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사제들의 활약은 결국「평화적인 해결」의 원동력이 되었으니까요.
연일 강경대책을 기본 방침으로 한 당국의 발표가 시위 가담자 전원의 완전 귀가에 대한 정부의 보장으로 급선회한 것도 사실 믿기 어려운 엄청난「반전」이었지요.
우린 진솔한 대화가 주는 묘미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우린 아직도 벼랑 끝에 서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동시위의 평화적 해결은 화염병과 최루탄, 학생과 전투경찰의 표피적 싸움이 단지 잠시 멈춘 것 뿐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극적타결」로 대변되는 명동시위가 평화적으로 해결된 이후에도 명동은 여전히 시위물결로 넘치고 있음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문제의 핵심」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오늘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그 문제의 핵심이 바로 4ㆍ13조치와 관련되어 있음을 진정 집권층만이 모르고 있다니 도대체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6ㆍ10사태」 「명동사태」가 과거의 시위, 규탄대회의 양상과 달리 국민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고있는 현상도「4ㆍ13조치」와 맥을 함께하고 있음을 그들은 진정 모른다는 말입니까.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하느님, 야권의 태도입니다. 직선제만이 살길이라는 주장 하나에만 매달려 오직 앞으로만 치닫고 있는 그들 역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벼랑 끝에 세워놓곤 합니다. 집권층이 최루탄으로 물리적인 힘으로, 아니 무제한의 공권력으로 국민을 위협할 권리가 없듯이 야당 또한 국민의 가슴을 있는 대로 졸이게 할 권리가 도무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ㆍ야가 한결같이 내세우고 있다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과연 이 나라 장래보다 중요한 것인지요. 하느님 대답 좀 해 주십시오.
하느님, 마지막으로 한번 더 여쭙겠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필요한지요. 참된 민주발전을 위해 우리가 걸어야할 십자가의 길은 아직도 멀었는지요. 아직도 당신이 마련하신 큰 뜻을 펴보일 때가 도래하지 않았는지요.
하느님 이젠 당신께서 나서야할 시간입니다. 당신의 차례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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