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학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덕보 아저씨를 다른 아이들이 부르는 것처럼, 『개똥아, 개똥아!』하고 부르기가 일쑤였습니다.
덕보 아저씨는 올해 37살인데 말을 잘 못할뿐만아니라, 생각하는것도 좀 모자랐습니다.
코흘리개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덕보 아저씨를 『바보 개똥이, 개똥이 바보!』하고 놀렸습니다. 덕보 아저씨는 그때마다『히히히-』하고 언제나 기분 좋은 얼굴로 웃었습니다.
콧구멍에는 늘 누런 코가 들락날락 하고, 바지는 엉덩이에 걸치고, 아이들에게 얻어맞아 멍이 시퍼렇게 들어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그저 좋다고 히쭉히쭉 웃었습니다.
개학한지 며칠 되지 않은 날입니다. 대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읍사무소쯤 왔을 때, 덕보 아저씨가 쪼그만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히히히』
덕보 아저씨는 피할 생각은 않고 아이들에게 몸을 내맡긴 채 히죽히죽 웃고 있었습니다.
『바보야, 너 고추 한번 꺼내봐. 넌 고추가 없다며?』
『이써(있어), 히히히』
『그럼 보여줘』
아이들은 우루루 달려들어 덕보 아저씨의 바지를 벗기려 했습니다.
동네서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동네에서 우리 동네 사람이 다른 동네 사람들, 그거도 아주 쪼그만 아이들에게 맞는다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왜 그러니?』
아이들은 내 말에 멈칫 했습니다.
『그 아저씨가 뭐 어떻게 했다고 그러는 거야?』
나도 모르게 아저씨란 말이 툭 튀어 나왔습니다.
『타누야, 타누야(찬우야 찬우야)!』
나를 본 덕보 아저씨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습니다.
『형, 이 사람은 아저씨가 아냐, 바보야. 봐, 말도 잘 못하잖아?』
『그래, 말도 잘 못하는 바보야』
아이들이 말했읍니다.
『말 못하는 바보라고 이유없이 놀리고 때려도 되는 거니?』
큰소리로 말하자 아이들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내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떴습니다.
『너들 까부면 주거(너희들 까불면 죽어) 히히히』
덕보 아저씨는 되돌아가는 아이들 뒤통수에 대고 주먹질을 하며 소리쳤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덕보 아저씨와 둘만이 있는 자리, 어쩐지 불편했읍니다.
『타누야 어이 가자』
덕보 아저씨는 내 손을 잡아 끌었읍니다. 뻣뻣하고 거친 손이지만 따뜻했읍니다.
덕보 아저씨는 내 책가방을 슬며시 빼앗아 들었읍니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따라 가기가 숨찼읍니다.
『타누야, 나 조타(좋다)』
『…』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읍니다.
「내가 왜 이런 바보 편을 들어줬지」
하는 마음이 불쑥 솟았읍니다.
『타누야, 나 니가 아저씨라고 부르니까 조타』
「내가 뭐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어서 불렀나?」하고 대답을 않고 있자,
『타누야』
덕보 아저씨는 내 손을 꼭 쥐며 나를 불렀습니다.
『타누야, 나보고 아저씨라고 부르지마, 그냐(그냥) 개또이라 부러(개똥이라고 불러) 난 개또이가 조와』
덕보 아저씨는 여전히 환하게 웃었습니다.
어실어실 길게 어두움이 몰려왔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뿌연 하늘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타누야, 이거 머거』
덕보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말라 베틀어진 고구마 조각을 꺼내 주었습니다.
베어먹은 자리에 흙먼지가 까맣게 낀 동가리였습니다.
고구마를 자꾸 먹으라 했지만 먹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덕보 아저씨는 천천히 건들건들 걷는 것 같은데 따라가기가 숨이 가빴습니다.
마을을 질러가는 오솔길 가까이 왔을 때 어둑어둑했습니다. 앞서가던 덕보 아저씨가 갑자기 앉아 손바닥으로 등을 두드렸습니다.
내가 그 옆을 그냥 지나치려하자,
『타누야, 어버』
나의 손을 잡아 당기며 얼른 등에 업었읍니다. 덕보 아저씨의 등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덕보 아저씨의 힘에 꼼짝도 할 수 가 없었읍니다.
아저씨의 등은 펑퍼짐하고 넓어서 좋았읍니다.
『아저씨, 힘드시지요?』
업혀가기가 미안해 겨우 입을 열었읍니다.
『심? 하나도 앙들어. 이 등으로 살 항가마미는데』
『타누야, 졸리면 자』
『꼬르륵 꼭꼭꼭 꼬르르륵 꼭꼭』
둥지를 찾은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억보 아저씨의 발걸음을 재촉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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