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이빨 보이며 똥차를 몰고 다니는 흰머리 소년아!』
이는 친구신부가 젊은 것이 귀밑머리가 허옇게돼 애처로왔는지 노래로 붙여준 별명이다. 내 친구중엔 똥가루 허빠리 라는 별명도 있고 은사님들중엔 개구락지 도깨비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도 계신데 그래도 그런 형이하학적 별명을 안붙여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탄광촌이 검은 곳이라 집, 산물, 사람도 검지만 그래도 흰머리는 독야백백하니 이 또 한 싫지는 않다. 아마도 젊은 것이 탄광에 와 사니까 고생하는 줄 알고 조물주께서 착각으로 뽑아올리신 털일지도 모르지만 검은 곳에 살며 돋보일 것 없는 내게 흰머리털로라도 돋보일 수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우신 착각이 아닐까. 옥니박이에 헌디난 이빨 눈은 코딱지만 하고 입은 합죽이처럼 생겼으되 귀밑에 흰머리가 꽤나 솟았으니 다른데는 어림없지만 귀밑만은 분명히 시골 귀공자는 됨직하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가슴이 콩만해졌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언젠가 나이께나 근 색깔있는 아줌마가 그것도 술 한 잔 걸치고 와선 『신부님 닮은 아이하나 낳아서 빵빵 때려 주며 키우고 싶어요』하며 울며 웃으며 떠들지 않는가.
따지고 보면 나를 그렇게 당황하게 했던 일도 다른데는 볼품이 없지만 나의 이 흰머리털 때문에 생긴 희극이 아닐까 착각해본다. 암사동성당에서 모금강론후 정문에서 인사를 하는데 젊은여자 두 사람이 몸에 무거운 장식들을 달고 와서 『신부님 젊다고 그러시더니 연세가 꽤 드셨네요』하고 묻자 서로 마흔일곱이다, 마흔아홉은 됐겠다하고 싸운다. 그래도 오십 이상을 안보니 고맙지 않은가.
강론도 잘 들었다 하기에 거짓말 같다고 했더니 정말 잘 들었단다.
내가 『강론을 잘 들었으면 손가락과 목에 걸린 누런 것들이 왜 그냥있어요』하니 그들은 『으악』하고 도망을 친다. 내 나이를 10년도 더 늙게 보는 이들이 그들뿐이 아니기에 어떤 때는 『이거 문제 많구나』하는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나 이 흰머리가 여간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첫째 인간적으로 좀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나의 팬(?)중엔 젊은 여자가 없다. 일단 나를 보면 귀밑머리 때문에 김이 빠지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참 치사한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신다.
둘째 흰머리 덕분으로 내 능력에 비해 일하기 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웬만하게 목덜미에 기브스를 한 것처럼 해도 그럭저럭 통한다.
본래 든 것없는 사람이 껍데기 가지고 폼잡는 법인데 그래도 통하니 어쩔것이냐.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바로 그분을 위한 것임을 알진대 별명이야 말대가리면 어떻고 소뒷다리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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