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성당에서 있은 「5ㆍ18항쟁 희생 추모미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을 대표하여 「박군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낭독한 김승훈 신부는 하루 저녁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구속을 각오하고 폭탄선언을 하는 기백을 보여 준때문이요, 성명 발표후 정확히 70시간만에 공권력의 은페ㆍ조작이 사실로 판명된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부님, 자랑스러운 우리 신부님, 우리는 신부님을 사랑합니다』라는 사랑의 고백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끔 되었다. 그리스도 신앙과는 거리가 멀고 작년과 금년의 시국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교수들조차도 정의구현 사제단의 용기를 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6월 10~15일의 명동성당 농성사태 때 서울대교구 성직자들은 근래 볼 수 없는 슬기와 용기를 발휘하여 당국과 학생들간의 극적인 화해를 가능케 했다. 11일 밤 정보기관 고위책임자가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해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하자 추기경께서는 『강제진압하려면 나를 먼저 맞서셨다고 한다. 추기경의 의연한 자세는 상상만해도 흥겹다. 경이야말로 우리 교회의 어른일뿐더러 우리 나라의 어른이시다. 아울러 엄청난 긴박감을 자아내는 상황에서 사제단이 보여 준 접촉과 저항의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놀랍다. 대외적으로 당국과 접촉하면서 최루탄 발사와 강제진압을 자제하도록 설득한 함세웅 신부, 대내적으로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폭력적 방법을 포기하고 마침내 자진 해산해도록 종용한 김병도, 양권식 신부 등 사제단과 수도자들, 하나같이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극적으로 농성이 해제된 다음 함세웅 신부는 기자들에게 사제단의 심경을 이렇게 술회한바 있다.
『학생들을 포용하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뜻밖의 사고가 있었다면 사제들이 앞서서 막고 이들과 함께 행동했을 것이다. 한 예로 10일 저녁 명동성당구내까지 수백발의 최루탄이 날아올때는 명동성당소속 신부들은 상당히 가슴이 아팠고 「이제 우리 사제들은 그리스도께서 겪은 고난의 형장으로 끌려가는구나」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 같은 상황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들에게 전하자 고난을 함께 하겠다고 찾아온 신부가 백여명이나 되었다』(동아일보 6월 16일). 김병도 신부도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만약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 학생들을 성당건물 안에 대피시키고 사제들이 입구에 서서 끝까지 성당을 지킬 각오까지했었다』(동아 6월17일).
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사람들다운 처신인가!
이처럼 당당한 모습들을 학계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는 본적이 없다. 요즈음 우리나라 천주교는 1974년 7월 6일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사건을 계기로 자생한 「정의구현사제단」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가톨릭
의 인기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최근에 비종교인 대학생 4백40명을 상대로해서『만일 종교를 가진다면 어떤 종교를 가지겠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1백41명(31.8%)이 가톨릭을, 59명(13.3%)이 개신교를, 1백43명(32.2%)이 불교를 택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김인호, 「한국 비기독교 대학생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 조사연구」아세아연합 신학대학원 석사논문 1987년 3월, 58쪽)
곁들여서 『요즘 주일예배를 주도하다보면 젊은이들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성당으로 옮겨간 탓이겠지요』라한 어느 대학교수겸 목사인분의 증언도 윗통계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우리나라 가톨릭이 이처럼 큰 호감을 얻는 것은 고뇌와 고통을 겪으며 정의구현에 앞장선 소수의 주교와 소장신부들 덕분이라 생각된다. 이분들 덕택에 복음의 요청에도, 시대의 징표에도 둔감하다는 다수 주교, 그리고 무난하게 사목한다는 노장신부들조차 도매금으로 존경을 받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넉살 좋게도 정의구현 사제단에 또 한가지 청을 드리고싶다. 미구에 민주의 새벽이 밝아와서 대외적 발언을 덜해도되는 날이 오거든 한결 같은 슬기와 패기로 우리나라 제도교회의 비리를 척결하는데 앞장서 주십사 하는 것이다.
4ㆍ13조치 이후 1천 5백여명의 교수들이 민주개헌을 요구하는 서명을 했다. 서명교수명단을 대충이나마 훑어보면 세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종합대학교의 교수단 가운데서는 많아야 20%쯤 서명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1백 22명이 서명했다지만 이는 서울대 교수단의 10%밖에 안된다.
2) 55세 이상 노장교수들은 좀처럼 서명하지 않는다. 서울대에선 노장교수들도 더러 서명했다하나 이는 예외현상일 것이다.
3) 서명교수 절대다수는 인문계에 속한다. 경상계ㆍ이공계ㆍ의학계ㆍ예능계 교수들은 좀체로 서명하지 않는다. 이른바 가치중립적 분야에 종사하는 탓일까. 어쨌든 이들이 인문계교수들에 비해 역사의식ㆍ사회의식이 훨씬 떨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비서명 교수들이 서명을 사양하는 사연 또한 가지각색이다. 용기부족으로 지행일치(知行一致)가 안된다고 솔직히 자인하는 교수도 딱 한분 있었다. 그밖에 내가 들은 서명사절사연은 대충 이렇다.
-보직 관계로, 승진 때문에.
-여권을 받아 해외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문교부 또는 기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다 또는 받고자한다.
-동생이 이민 수속하는데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곧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는데 문교부에서 승인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부인이 말려서, 노부모와 아이들을 생각해서.
-젊은 교수들이 하는일에 나이많은 사람이 뭘.
-가톨릭신부가 나서는일에 끼이고 싶지 않다.
-성명서중 적절치 못한 표현이 하나있다.
-서명교수들이 당하면 나서주겠다.
-결정적 순간이 아니므로 서명을 보류한다.
-서명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
이처럼 잡다한 사연들만 보아도 대학교수들과 정의구현사제들의 됨됨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교수들은 가족부양의 책임을 느낀다, 유사시 해직을 염려한다, 최악의 경우 좌경용공분자로 몰릴세라 두려워한다. 이에비해 사제들은 저 세가지 근심에서 비교적자유로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양자간의 차이는 결국 신앙의 신념과 지식의 신념이 다른데서 비롯할 것이다. 신앙과 지식ㆍ삶과 앎ㆍ거룩함(聖)과 속됨(俗) 사이에는 연결되는 면도 있지만 단절현상도 상당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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