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단이 일치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옥이라도 기꺼이 따라가겠다』70년대 후반 교회내에서 갑론을 박이 한창일 때 한 원로사제가 한탄조로 내쏟은 말이다. 여기서 표현한 「지옥」이란 물론 상징성을 띤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교회모습이 보기에 따라서는 지옥보다 못하다는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단면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17명이나 되는 주교단이 복잡 미묘한 시국 문제에 있어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면 바람직스러울 수도 있다. 주교단의 일사불란한 시국관은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다수의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교단의 일치된 견해라고 해서 이를 신자들에게 강요하거나 구속력을 갖는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이치는 본당 사제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당 사제가 공개적으로 극명하게 시국관을 내보이는 것은 자칫 견해와 입장을 달리하는 신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거나 심한 경우에는 냉담의 사유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시국관은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라는 교회 고유의 정신으로 서로의 견해와 의사를 존중하면서 인간의 기본권과 절대선을 추구하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이른바 「6ㆍ29선언」과 그 후속 조치로 정국의 큰 매듭이 풀렸다. 곳곳에서 활기가 넘치고 화해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정말로 반가운 일이고 기쁜 일이다. 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사건이래 시국문제와 깊이 관여돼 모진풍랑을 겪어왔다. 그 연유야 어떠하든 모두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한 충정에서 우러나온 행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이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화의 계기는 마련되었으니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산적돼있다. 당면한 문제는 정부ㆍ여당이 이번에 보여준 결단의 의지로 사심없이 풀어 나가야 하며 최후의 선택은 국민에게 맡겨야한다. 그동안 교회가 전개해온 노력은 값진 결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정국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정도 (正道)를 걸어야 하겠다. 이제 시국의 어지러움으로 인한 교회내의 불협화음을 종식하고, 그동안 교회 밖으로 소모했던 교회의 역량을 사목적인 측면에서 십분 활용하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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