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간 우리는 실로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노태우 대표의 상상을 초월한 선언, 이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전폭적인 수락 등 굵직한 선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고 모두가 들뜨고 기분 좋은 한주일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꼬리도 없고 조건도 없고 단서도 없었다.
세계가 놀란 8개항의 폭탄선언에 물론 믿기지 않는 표정도 있었다. 선뜻 믿기지 않는 표정, 어쩌면 그것은 바로 어제까지 우리가 겪어온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라 여겨진다. 힘과 힘의 팽팽한 대결, 숨막히는 정국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난무하는 유언비어에 시달렸으며 어쩌다 내어놓는 정부의 단편적인 발표에는 발표 그 자체보다 「이면의 진짜 속셈」을 의심하곤 했다.
돌멩이ㆍ화염병의 난무 그리고 민심을 돌려놓은 최루탄의 폭우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절망뿐임을 슬퍼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모두가 증언하고 천하가 아는 일이지만 노대표의 선언과 대통령의 수락을 통해 우리의 선택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돌아선 것이다.
좀더 빨리 내렸어야할 단안이라는 아쉬움의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은 분초를 다투던 긴장속에서 벗어난 다음에야 누릴 수 있는 사치이자 욕심일 뿐이다.
이제라도 결코 늦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잃어버렸던 믿음과 신뢰의 회복이다. 흥분된 감정과 격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진정 마지막의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민심 (民心) 이 하늘에 닿아 이루어진 값진 선물을 사소한 문제때문에 걸려넘어져 망가뜨리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모두는 많이 흥분하고 분노해있었다.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하는 동안 정치인도, 재야인사도, 학생도, 소시민도 그리고 종교인도 모두 흥분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4ㆍ13조치로 극에 달했던 흥분과 분노속에 모아진 민심, 그중에서도 종교인의 역할은 오는 우리가 누리는 기쁨을 얻기까지 중요한 몫을 담당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감회와 기쁨은 남다를수 있는 것이다.
정치무대는 이제 본래의 무대로 돌아서야할 것이다. 그것은 역시場外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학생과 종교인의 임무가 「본무대」로 돌아서야함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정치권 안에서 풀러나갈 때만이 가능한 일일것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종교인들이 교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민주화의 한복판에 서있다고 말 할 수가 있다.
6ㆍ29의 극적전환을 통해 우리는 역시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를 깨달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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