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는 복음화를 모르는 것같은 때도 있다-
이역만리에서 사제가 되어 우리나라와 같은 전교지방에 와서 말을 배우고 풍속을 익히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며 좋은 표양임은 확실하다.
바로 가까운 곳에 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나서 전교신부로 와있는 분이 한분 계셨다. 이 사제는 농촌에 가서 농부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함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밭에 가서는 밭을 매고 논에들어가서는 모도심고 벼도 베며 손 밭에 흙을 칠하고 거머리에 물리고 땀을 흘리며 농부들과 똑같이 일을하고 아픈 허리를 펴기 위하여 논두렁에서 함께 쉬곤 하였다. 그가 타고다니는 오토바이는 다헐어서 소리가 요란히 나는 것이였다. 농촌일을 이따금 하는 것이 아니고 농번기에는 거의 날마다 하는 것이였고 그의 잠자리는 시골강당의 작은 방이었다. 시설도 부족하고 누추했으며 밤에는 모기와 싸우면서 잠을 자야하는 방이었다. 이 사제는 신자이든 비신다이든 차별없이 도와주었지만 보수를 받지않았다. 그저 다른 농부들이 먹는대로의 식사제공과 하루에 담배 한갑만 받으면 아무말없이 서처럼 일만하고 아침에 미사를 지내며 틈틈이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한번은 좀 우스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신부님이 처음에 논에 들어가서 모를 심는데 과자와 같이 단단한 것이 손에 잡히어서 쪼개보았더니 「개똥」이 더라는 것이었다. 서양에서 온 사제가 논과 밭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것을 본 인근의 신자들은 신부가 할일이 없어서 저런 일을 하는가 하면 외교인들은 『저 신부의 눈은 파랗고 머리는 노랗지마는 우리 형 같고 우리 동생 같아서 좋단말이여』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신자는 『신부님, 기왕이면 신자들을 도와주십시오. 지난해에 신부님께서 밭도 매주고 모도 심어준 외교인은 그 뒤로도 성당엘 나오지 않으니 더 도와줄 필요가 없지 않아유』라고 했더니 『그런 소리 하지마세요. 주님께서 믿는 사람에게만 먹을 것을 주었습니까?』하고 대꾸하더라는 것이다.
위에 말한 사제는 임시로 귀국하여 전교회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지난 날에 우리 나라의 시골에서 농민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일하던 것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되돌아 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실화를 들으면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시고 따르라고 하신 복음화를 모르고있지 않나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때가 있다.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표양을 따르는 길은 어떠한 길인가? 사제 모두가 모를심고 거머리에 물려야한다는 뜻이 아니고 노동자를 사랑하고 농민을 사랑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길은 그들의 생활속에 뛰어들어가서 함께 땀을 흘리고 고통을 나누는 길밖에 더 있느냐하는 것이다. 손발에 흙먼지하나 묻혀보지도 않은 사람이 농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리스도는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세상에 오셨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고달프고 땀을 흘리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기전에 먼저 땀을 흘리고 어렵게 사셨다. 오늘의 교회가 나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하고 반성할 때가왔아고 감히 생각해본다.
복음화를 모른는 교회가 있다면 이보다 더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하는것이 복음화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성경교리를 가르치도 성세성사를 받게 하는 것만이 복음화라고 생각하는 옹졸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교회는 그야말로 불행한 집단이다. 육신의 문제이든 사회의 문제이든 경제의 문제이든 먼저 해결하여 주는것도 사랑의 실천이며 복음화가 아닌가?
천국의 열쇠의 치샘신부와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 신부는 소설에 나오는 가상인물 아니고 실제인물임은 누구나 다 잘알고 있다. 모든 교우들과 사제들이 그들과 똑같이 해야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모든 신자들이 다 선교자가 되고 수도자가 되어 야 한다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분들의 정신을 따라서 사는것이 그리스도의 길이며 복음화의 길이 아닌가? 이웃들에게 무엇을 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들의 형제가 되어 주는 것. 즉 함께 모를 심고 거머리에 물리고 막걸리를 먹는 어느 사제의 정신을 따라서 실천해야만 하지 않나하고 생각해본다.
흔히 우리는 강생(降生)의 뜻을 잊어버리는 때가 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진리와 사랑을 가르치시기전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잊고있는지도 모른다. 불쌍한 인간을 구제하기 전에 먼저 불쌍한 사람이 되셨음을 깨우치고 따르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이 때문에 부유하고 편리하게 살면서 어려운 사람에게 복음선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촌사람과 같이 어려운사람과 같은 수주의 생활을 하지않으면서 농민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는것과 같다.
진정한 복음화의 길은 빨리 성당을 신축하고 성체성사를 주려고 하는 일 보다는 신자들이 이웃들과 생활속에서 사귀어 친구가 되고 형제들이 되어 주는 길이라고 보는것이다. 서민들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떠나서 사는것 즉 서민들과 같이 먹고 마시지 않는것은 복음화를 망각한 신자의 소행임이 복음에서 즉 그리스도의생애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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