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그 수태순간부터 자신의 개체성(individuality)과 자기정체성(identity)을 최대한으로 도모하고 또한 자신의 성장과 심지어는 後生까지도 지탱할수 있도록 그들은 보호할 「가정」이라는 맥락에서 태어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비록 권리라는 것이 실제적으로는 현존하는 인간에게 부여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언급되는「태아의 살 권리」또한 정당한 것이다. 만일 태어날 아기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바정상일 확률이 높다고 하여 임신을 교묘히 조정하려 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그 아기의 권리가 침해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의마에서 태아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태아가 비록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생산물로 생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태아는 오히려 가정의 계획에 동참하는 동반자(companion)로서 그 공동체에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부모와「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만일 부모들이 훌륭한 부모가 되고자 한다면, 인류의 구성원이요 그들 자신의 가정의 구성원인이라는 신분을 태아에게 할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의 선택이 얼마나 가정적이지 못한 것인가, 그리고 진실된 부모의 입장이 아닌 지백적인 입장에서 선택하는 것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이나 법은 자녀들이 혼인한 부부의 참 자녀로 태어날 권리뿐만 아니라, 수태 순간에 있는 태아가 연구실험상의 명목으로 손상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도 명백하레 고려해야 한다.「법은 우리의 문명사회를 떠받치고있는 원칙들과 그밖의 다른 장에서 현존하고 있는 법을 지지하고 구현해야 한다. 무죄한 생명은 범죄적 법과 대중정책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약세를 차별하여 강세를 지지하는 법은 어느 곳에도 없다……강하고 건강한것만큼, 무죄하고 나약함도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것이다.」또한「법은 生父母(생물학적인 어버이)와 달리 양육상의 어버이의 자녀로 태어나도록 교묘히 조작하는 IVF행위들을 장려해서는 안된다.
또한 혼인계약과 진정한 부분관계에서가 아닌 대리어머니에게서 아기를 계획적이고 교묘한 방법으로 임신하도록 장려해서도 안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는 혼외로 벌어지는 IVF나 그밖의 인공수정을 장려해서는 안된다. 정액을 제공하는 대리아버지나 자궁을 빌려주거나 혹은 난자를 제공하는 대리어머니 구실 등의 행위는 모두 배척되어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태아의「살 권리」나「날권리」는 자녀를 원하는 부부의 소망보다도 근본적으로 우선하는 것이니만큼 태아의 행복이 다른 어떤 요구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의학기술의 묵임 극복 시도에 관한 교회의 입장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지혜를 위대한 善으로 생각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아기를 갖고싶어하는 불임부부들에게 열려져있는 과학적 진보 또한 환영한다. 또한 교회는 인간공동체안에서 사람들의 임신환경이 어찌되었든지간에 자녀들을 출산하려는 모든 시조들을 환영하여 왔고 앞으로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습득하는 모든 방법들이 헛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과학과 기술은 그 고유의 방법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고 부당하게도 이런 학문의 연구방법을 지리발견의 최고법칙이라고 여길 때, 현대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현상론과 불가지론을 조장하게 된다.
더구나 현대의 발명을 과신하는 나머지 인간은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며 더 높은 것을 찾지않게 될 위험도 있다」(사목57). 이러한 의미에서 Leon R. Kass박사도 인간에 대한 조작은 화형에 해당되는 대죄라고 고발하고 있다.「우리들은 기술로써 자연을 정복하려다가 비싼 댓가를 지물하게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싸게 치인 것은 자연이라는 존재를 우리들이 조작하고 개발하고 개조하기 위한 단순한 재료로 보아넘겨 버려서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린 일이다. 그리하여 현재 모아지고 있는 생물공학의 힘을 사용하게 되면 우리들의 인간관이 마찬가지의 파멸의 길로 향하게 될 위험성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살실인즉, 우리들은 이미 인간을 거룩한 존재 또는 신성을 지닌 존재로 보는 견해, 자유와 존엄성을 아울러 갖는 창조물로 보는 사상이 침식당하고 있는 것을 눈 앞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한낱 肉으로 보게되면 우리들도 육으로 타락해버릴 것은 자명하다. 인간공학을 위한 새론운 기술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진화의 진로를 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낯익은「人間的인」생활은 종지부를 찍게될 것이다. 현재의 생활을 대신하게 될 비인간적인 생활 편이 보기에 따라서 우리들이 생존한다는 권리, 즉 인간으로서 생존한다는 고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같이 유토피아적인 환상을 쫓아서 우리들의 생물학적 소질을 개조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더우기 앞으로의 전망도 없는 가운데 오로지 전능의 수법을 구사해서 개조하려는 것이다. 이 움직임과의 대결을 회피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계속하기는 아마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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