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한 분이 직장을 옮기느라 마산에서 안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사정이 이리저리 꼬이느라 전세입주금을 은행에서 찾지 못한채 이사짐을 싣고 올라왔다. 그런데 늦은 시간에다 비까지 내리니 예금된 통장을 내보이며 그저 집주인의 선처만을 바랄 수 밖에.
갑자기 바뀐 환경에 놀란 나머지 겨우 말문을 열 또래의 꼬마들은 비맞은 강아지 모습으로 칭얼거리는데, 연로하신 어른들은 피곤에 젖어 계시고, 이사짐은 밖에서 비를 맞고 있으니, 이만하면 6ㆍ25때 피난살이 장면의 재현으로 충분할 게고 그 누가 보아도 처량하고 답답하지 않으랴.
그런데도 집주인은 전세금을 내놓기전에는 한 발자국도 집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고 하더란다. 통사정을 하다가 우연히 가톨릭 신자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제서야 집주인은 자기 아내도 천주교 신자이니「어디, 신자 한번 믿어봅시다」하더라나. 그러면서도 사람은 절대로 안되고 그저 이사짐이나 집안에 들여다 놓으라며, 이에 덧붙여 왈「나는 하느님과 돈만 믿습니다」라고 장엄하게「신앙선포」를 하더라는 것이다.
손이 안으로 굽는 사람에게서 전해둘은 이야기이니까 피곤함과 서러움을 달래느라 초치고 장치고 했으리라 짐작은 간다. 아뭏든 그 집주인에게 하나 고마운 것은 그가 한마디로 전능하다는 달러(돈)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몇년전 어느날, 그것도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던날, 나는 버스표 하나가 없어서 혜화동 교리신학원에서 수유리 4ㆍ19탑 앞까지 걸어서 퇴근했던 적이 있다.
모르는 이들이야 미련하다느니, 젊어서 객기를 부리느라 그랬다느니 하겠지만, 그때 토큰하나 없어서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10㎞걸어야했던 당사자의 마음이야 오죽이나 서글프고 뒤틀렸으랴.
초인종을 누르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핑돌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대처럼 배가 아플 수가 없었고, 무언가 와장창 순서를 뒤바꿨으면 하는 소망이 저 속에서 부터 일렁거렸다. 하기야 지금 생각하니 그날의 결심따라 등쳐 먹고 감빼먹고, 이러쿵 저러쿵 천방지축 날뛰더라면「개눈에 똥만 보이듯」내 눈에는 돈만 보이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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