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적하는 것은 인간생활의 이기나 기술까지도 부인하는데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현대의학기술이 불임을 극복하는데 生氣를 줄지도 모르며 또한 불임 극복시도를 활성화하도록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인간의 행위에는 원칙상 윤리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즉 어떤 정당한 목적의 추구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수단이 될 수 없는 물리적인 악이 인간적 행위에선 생기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때에는 상응한 중대한 이유가 있으면 그 원인에 의해서 선과 악의 두 결과가 나온다해도 그자체가 善인 원인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2중결과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 원칙은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서. 물리적인 악은 결코 정당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다만 수단이 허용되는것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있다. (中略)
따라서 우리사회의 과학과 의학의 기술의 妙는 우리를 위한 봉사로서만 존재해야하는 것이며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을 조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인간존재. 즉 인간생명 그 자체에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관심은 과학적 실행을 지탱하고 있는 영구적인 원칙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을 존중하지않는 방법으로 인간지혜를 이용하는 행위는 인간공동체에서 배척을 받게 될것이다. 즉 그러한 비인간적인 목적들이 생물학 의학등 과학적 진보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배척되어야할 것이다.
결론
가톨릭 전통은. 생물학적 탐구와 진보는 그 기술적 적용과 더불어 인간 개개인의 품위와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데 비로소 성취될 수 있다고 늘 확신하여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혼인한 부부로서 자녀를 열망하는 혼인부부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술적 조력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 기술적 조력이라는 것이 인간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방법으로 실시된다면. 이때의 조력은 다만 불임을 동정하는 이유에서. 부부의 성행위를 무시한다거나 태아의 권리를 말살하는 조력이 될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교회내에는 이 「기술적 조력」문제를 두고 보수적 윤리신학자들과 진보적 윤리신학자들 간에 상이한 견해차이가 있다. 아무튼 이러한 상이한 견해에 대해 내릴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인공수정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하다. 즉. 인공수정이라는 것이 불임을 완화하기위한 목적으로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편과 아내 사이의 정상적인 性交와 그 결과로서의 수정을 돕는 하나의 「보조수정」 (assisted insemination)으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방법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조수정이 도저히 적용될 수 없거나 혹은 아무 효과가 없을 때. 적어도 이들 부부에게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구성하는 일치적 의향이 절실하다면. 남편의 정액을 받아 인공적으로 수정시키는 방법 (AIH)도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남편의 정액을 이용한 부인의 수태라 할지라도 남편의 자위행위가 최우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남편의 행위에 혼인의 목적인 출산을 지향하는 선의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은. 아무리 보충(Su-pplementation) 혹은 조력이라는 의미라고 해도. 그의(그녀의) 진짜 부모의 자연적인 성교행위에서 아기가 출생한다는 것만큼은 아무도 바꿔놓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체외수정(IVF)이 비록 태아상태의 인간존재를 살해하거나 상해하는 거도 아니며. 또한 오직 합법적인 남편과 아내의 정자와 난자만을 이용한 수정방법이라 할지라도 고유의 윤리성이 결핍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체외수정에는 부부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일치적 사랑과 통교 그리고 우정이라는 독점적인 성교행위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앞서서 우리가 고찰한 바. 성교행위는 동반관계로서의 파트너 쉽에 순응하는 면모를 깊이 구현하는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인간적인 요구로서의 출산행위와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는 출산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제Ⅲ부에서도 언급한 바있듯이. 가장 큰 죄악은 파괴적인 실험과 관찰로서.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윤리적인 결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많은 수정란의 상실은 물론이고 막상 수정된 태아(胚)의 주입(이식) 시간을 지체함으로써 태아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상해하는 실험 관찰은 분명히 태아 자체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외에도 교회가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은 혼외로 벌어지는 인공수정(AID)이나 체외수정 (IVF)이다. 예컨대 미혼여성의 인공수정 및 기혼여성의 인공수정(AID)은 생식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으로서 새로 태어나는 인간존재의 근본적인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절대로 허용될수 없다. 또한 체외수정 (IVF)은 인간태아를 생산물로 예측하는 면이 다분하며 우생학적인 판단하에서 태아를 선별출산하는 행위로까지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더우기 이러한 방법들은 무서운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비인간적인. 인간태아 저장은행까지도 계획하고 있는것이다.
자녀는 인간의 본성과 그의 창조주로부터 정해진 인격적행위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인간수정의 근본적 의미를 재인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은 1980년 1월에 천명된 영국 가톨릭주교단의 합동진술서에 나타난 내용이다. 『수태순간부터 새생명이 현존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살아있는 정자와 어머니로 인한 살아있는 난자가 결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생명의 전달로서의 그 결합은 새생명의 시작인 것이다. 이 새 생명은 항상 그리고 언제까지나 재체적 존재로 남아 있을것이다. …각 개체의 새로운 생명은 잠재적인 인간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발달가능성을 지닌 인간존재이다.
이와같은 발달가능성의 점진적인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을 제4주. 제8주. 제12주. 제20주. 제24주. 제28주라고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과정 (수치로 판정되는)은 바로 내가 존재하기 시작한 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을 것이다. 출생자체는 확실히 우리 각자의 라이프스토리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이프 스토리의 시작에서부터 모든 수태기간을 신중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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