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는「신국론」에서 교회를 천상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로 양분하고 상세히 비교ㆍ서술한 바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가톨릭은 제도교회와 현장교회로 갈라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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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26일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개최된 춘계주교회의는 전국 단체에 관해서 충격적인 결정들을 내렸는데,
그것을 눈여겨보면 제도교회의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결의문은 서론에 이어 네 항목으로 짜여있는데, 제1항은 총론이고 나머지 3개항은 각론들이다. 결의문은 이미 알려졌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까닭에 여기에 다시 옮겨 놓는다.
『…한국교회의 재치권자 주교들은 그들의 통상적 교도권을 더욱 적절히 행사하여…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1)비록 전국기구일지라도 해당교구장이 명확히 승인하지 않는 한 그 기구는 그 교구내에서 활동할 수 없다.
(2)평신도사도직단체는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도 회원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한 가톨릭 농민회의 회칙은 더 이상 존속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전국 본부는 활동을 중지하고 교구 단위 농민회는 주교단의 방침과 교구장의 지시에 따라 교구별로 정비하고, 새로운 규약을 제정하여 활동을 재개한다.
(3)가톨릭 학생회는 각 단위의 회가 모여 협의하는 협의체 체제로 조직되어야 한다.
「가톨릭 학생 총연맹」이라는 단체는 학국 주교회의가 인정한 바 없는 단체이다.
(4)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새로운 회칙이 주교회의의 승인을 얻을 때가지 각 교구 평협만 활동을 계속한다.
전혀 뜻밖의 결정을 대하고 세상도 놀랐고 교회도 놀랐다. △「천주교 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 개최동향」이라는 제하의 이른바 정부관계 기관보고서에서는 주교단의 결정을 전폭 환영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4월 10일자 사설은 주교단의 결정을 극찬하였다. △4월 12일자 가톨릭신문은 앞뒤 문맥이 통하지않는 기이한 사설을 실었다.
△윤일웅씨가 월간조선 6월호에「한국천주교회의 갈등」이란 제목으로 결정 배경과 영향을 심층취재하였다. 그밖에도 주교단의 결정을 둘러싸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의문을 훑어보면 석연치 않은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서론에「재치권자 주교들」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주교단이 복음적 관점에서보다는 교회법적 차원에서 중차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겠다.
△결의사항 ①은 총론인데 그 내용인즉 주교회의에서의 결정은 아무런(교회법적?)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교구자치제를 내세워 주교단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다니 망연자실할 뿐이다.
각 교구장은 주교단의 결정에 구애받지않고 마음대로 처신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각 주임신부 역시 교구의 결정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결의사항 ②에는 가톨릭신자 아닌 회원은 가톨릭농민호에서 제명해 마땅하다는 뜻이 담겨있다.「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하는 농민의 자발적 자주적 모임」이 되려는(가농 회칙 제2조) 가농에 가입하여 10년 20년 고락을 함께한 회원을 단순히 세례를 받지 않았다하여 내쫓는 것이 진정 사목적 배려인가?『우리를 반대하지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것입니다.』(마르9,40)라 하신 예수님의 도량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협량아닌가?
△결의사항 ④에는 따로 주석을 필요가 없다. 지난 4월 3일 한국 평신도사도직 협회의회 회장에게 총재주교가 보낸 공한 몇줄만 인용하면 충분하리라.
『…공문의 내용은 전국협의회의 활동을 중단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규약이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을때가지라는 시한이있으나, 내용은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것을 회장님도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전국기구로서의 평협활동은 극히 제한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주교님들의 뜻고 전국기구로서 많은 활동을(예로 KBS시청료 납부거부운동ㆍ필자주)하고 싶어하는 평협간부들과의 의견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지방자치제입니다.
지역교회는 교구단의이고 전국기구는 주교회의까지도 협의기구이므로 평신도단체들이 교구 단위를 초월해서 전국기구로 자체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주교님들이 원치않으십니다…』
결의사항 ②~④에서는 한결같이 농민회ㆍ학생회ㆍ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전국기구를 약화,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그러니 유신이래 이제까지 저 단테들을 억암해온 정부ㆍ여당에서 쌍수를 들고 주교단의 처사를 환영할만도 하다. 자기네가 아무리 하려고해도 잘 안되는 일을 주교단이 대신 해 주었으니 말이다.주교단은 적어도 이 시점에서 주교단이 내린 일련의 결정들에 대해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고 모든 국민이 한 마음으로 오직 민주화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때가 아닌가.
민주화로 가는 길이 교회라고 예외여서는 안될 것이다.
『갈라놓고 다스려라』는 로마 속담을 따를 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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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단이 앞서 말한 결정들을 내린데는 권위의식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교회직분을 봉사로 이해하기 보다는 지배로 곳해하지 않았나 염려된다. 마태오 23장 8~10절을 명심해 마땅하리라. 곧 예수님 홀로 스승이요 지도자시니 교주(敎主) 행세는 금물이다. 하느님 홀로 아버지니 가부장적 태도는 어불성설이다. 아울러 평신도ㆍ수도자ㆍ하급 성직자들도 분명「선택적 민족ㆍ왕다운 제관ㆍ거룩한 겨레ㆍ하느님의 백성」인이상(1베드2,9~10)그들의 실정을 잘 살피지도 않고 한맺히는 결정을 내릴세라 매우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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