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왕림리 소재왕림(旺林)본당이 본당설정 1백주년을 맞이했다.
왕림본당은 우리나라 한수(漢水) 이남ㆍ경기도 최초의 본당이자 명동(1882년경) 계산동(1886년) 풍수원(1888년) 원산(1887년ㆍ1949년 폐쇄)본당에 이어 국내 5번째 본당으로서 오늘날 수원교구의 뿌리이기도 한다.
한국가톨릭의 역사는 2백년이 넘었지만 최초의 교구인 조선교구가 설정된 것은 1831년이다. 조선교구 설정 후에도 지속된 박해로 인해 초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브루기에르 소 주교는 조선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교구 설정 후에도 50여년 동안 교회의 기본조직인 본당이 설정될 수 없었던 것이 한국교회의 실상이었다. 교구 설정 후 국내최초의 본당인 명동본당의 설정이 1882년경으로 알려질 정도로 당시의 본당은 오늘날과 같이 제대로 행정체제를 갖출 수가 없었다.
따라서 명동과 함께 계산동ㆍ원산ㆍ풍수원ㆍ왕림본당은 1886년 한불수호 조약이 체결되면서 종교자유가 공인된 후 최초로 설립된 본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왕림본당 설정 후 한국 교회는 이듬해인 1889년 답동본당을 필두로 1900년까지 전국적으로 25개 본당(북한 침묵의 교회 9개 포함)으로 늘어나면서 발전의 기틀을 다져왔다.
왕림본당 역사 1백주년은 결국 한국가톨릭의 본당역사 1백주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그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속칭「갓등이」로 불러진 왕림지역은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한 곳이며「치명일기」에 수록된 최 야고보와 한안드레아등 2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왕림은 수원에서 충청도로 가는 산길에 위치, 박해시대 때 전교여행을 다니는 선교사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이다.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아니라 교우촌을 형성하고 있어 신변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림본당은 본당설정 5년 후인 1893년 한국교회 최초의 사학인 삼덕학교를 개교, 학교교육을 통해 수많은 성직ㆍ수도자를 배출해온 성소의 온상으로서도 큰 몫을 해냈다. 삼덕학교의 후신인 광성국민학교는 지난 81년 이농현상 등으로 입교할 학생이 없어 자진 폐교했으나 이 자리에는 현재 수원가톨릭대학이 터전을 잡아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왕림본당 1백주년은 한국교회 본당역사의 시원이며 교회사적인 측면에서도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본당설정 1백주년을 맞이한 5개 본당 가운데 원산본당은 폐쇄됐으며 명동과 계산동 본당이 각각 서울ㆍ대구대교구의 주교좌 본당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풍수원과 왕림본당은 시골본당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풍수원과 왕림본당은 비록 외형적으로 초라하지만 한 세기가 넘는 유서 깊은 본당역사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왕림본당 1백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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