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정신과의사 엘리자베드 퀴볼러로스 박사는 임종,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의 심리과정을 다선가지 단계로 나누어 진단한바있다. 불치병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환자들이 나타내는 심리적 단계는 「거부」와 「분노」,「타협」과 「사기저하」, 그리고「수락」등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한 진단결과 자체를 부정하고 계속 일속에 자신을 숨겨버리는 첫 단계에서 부터 분명한 현실을 직시한 후 자신의 죽음을 부당한 것으로 여기며 분노하는 다음 단계로 5단계 중 앞부분에 해당된다하겠다. 다시 이를 극복하면서 이어지는 타협의 단계, 즉 현실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을 놓고 절대자와 타협하는 제3단계에 이어 현실에 대한 인정은 슬픔으로 나타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자하는 사기저하의 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마지막과정이 수락단계. 자신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비하는 수락의 단계는 평화로운 임종을 준비하고 맞는 최종단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다섯 단계가 모든 임종환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어느 한 단계에 머물 수도 있고 모든 단계가 혼합적으로 나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죽음에 대한 문제는 터놓고 이야기하는 대상에서 제외되어 온 게 우리네 실정이다. 누구나 겪고 맞이해야할 죽음이지만 이를 드러내놓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죽음이 예견되는 말기암 환자 등 임종환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것은 미묘한 문제로 명쾌한 정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년전부터 이 미묘한 죽음을 제가 보다 쉽게 거론되기 시작했고 이를 주제로 활발한 토의가 시도되는 등 죽음을 접하는 우리 의식에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정신적 안정을 돕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활동이 그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터부시되어온 죽음, 그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자 한 과정임을 받아들이며 임종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호스피스는 가톨릭병원을 중심으로 조금씩 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얼마 전 강남 성모병원에 건립된「호스피스병동」은 호스피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입증해보인 뚜렷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의 질서에서 예외일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것이 이치이다.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어야할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11월 위령성월은 죽음에 대해함께 생각해보는 계절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하겠다.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은 지금,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의 엄숙함과 당위성을 일깨워주는 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죽음이 삶의 과정 속에 공존하는 한부분임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올바른 죽음이 삶을 완성시키는 오직 한 길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