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형편을 보노라면 온통「민주화」로 들끓고있다. 수십년 가두어 놓았던 봇물이 순식간에 터지듯 사회 구석구석에서 민주화가 외쳐지고 있다. 우리 국민이 그 얼마나 민주화를 갈망하고 원해왔는가를 피부로 체감하는 현실이다. 민주화의 외침은 크게는 정치의 민주화로부터 학원ㆍ언론ㆍ출판ㆍ기업체ㆍ공장ㆍ병원ㆍ농어촌ㆍ탄광촌 등등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앞을 다투어가며 파장을 더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된다.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모든 면에서 민주화가 하루 속히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고, 또 한편으로는 수십년 묵은 非民主ㆍ反民主를 일시적으로 전부 일소하려는 성급함에서 그 부작용이나 역작용으로 모처럼의 민주화 기회를 또다시 잃어버리지는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이 염려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순서와 단계를 밟아야하는데, 조급한 나머지 중간과정을 도외시해버리고 좋은 결과만을 요구한다면,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에서이다.
그래서 민주화는 강한 외침과 성급한 결과만을 기대하기보다는, 첫출발부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면서 각 과정마다 성실하고 참된 노력이 중요하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소망하는 진정한 민주화의 길은 국민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길이 아니겠는가 싶다.
「民主化」란「民이 主가 되는 것」즉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것」을 뜻한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국가들을 제외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主權在民)은 너무나 지당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법이 이를 보장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 백성은 어떤 위치를 누리며 살아왔는가?
돌이켜보면 서글프고 한스럽기 이를데 없다. 독재자의 강압적인 명령이나 그와 그 하수인들이 엮어놓은 그물들 즉 制度에 갇혀 주인행세는 고사하고 그 반대의 삶을 지탱하온 것이다. 할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걸핏하면 남북대치란 긴박감과 위기의식을 조장, 자유를 제한하고 갖가지 구실과 이해못할 이유 등을 내세워 천부의 권리,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을 유보하거나 축소시켰던 것이 사실이다. 악법도 지켜야한다지만, 그동안 독재정권들 하에서 얼마나 많은 법들이 제정돠었으며 그 법들이 얼마나 인권을 침해했는가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게 해놓고 집권소수 권력자들과 그 그늘아래 노니는 특권층들은 최대의 권리와 자유를 만끽하며 태평성대를 구가해오지 않았는가.
주ㆍ종의 위치가 뒤바뀌어 살아온지 근 40년이 가까워서인지 이제는 누가 진짜 주인이고 누가 하인인지 분간조차도 하기 힘든 상황까지 왔다.
권좌에 앉아 위협과 호령만하면 그 사람이 바로 나라의 주인이고 백성은 하인처럼 살아온게 우리의 지난날들이었다.
바로 이처럼 주ㆍ종이 뒤바뀌어 바르게 분간하기도 힘든 위기직전에서 백성의 힘으로 되찾게된 민주화는,강제로 잃어버렸던 본래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데 있을 것이다. 마치 도둑이나 강도한테 강탈당했던 집과 재산을 되찾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집에 찾아드는 집주인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이미 우리의 뼈아픈 역사속에서 36년이란 기나긴 일제식민통치가 종식되고 8ㆍ15해방을 맞으면서 잃었던 내 나라, 잃었던 주인자리를 되찾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백성의 손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세웠고 일꾼인 대통령을 손수 뽑아 국가의 대사를 맡겼던 것이다.
그때부터 40년이 흔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잃었던 주인자리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맞고있는 것이다. 나라의 일꾼인 대통령을 백성의 손으로 직접 뽑고, 백성의 자유나 권리를 터무니없이 제한하는 모든 제도나 악법 등은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제는 그야말로 주인의 입장에서 매사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할 위치에서 있는 것이다. 외세의 간섭이나 눈치볼 필요도 없고 누구를 겁낼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오로지 이 나라의 현재와 장래, 우리 백성과 그 후손들에게도 행복과 번영된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길을 모든 면에서 심사숙고해야할 때이다. 이 시기를 잘못 넘기면 또 다시 불운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성과 냉정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백성 모두가 제각기 자기의 위치로 되돌아가 맡은바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많은 요구와 기대를 한꺼번에 충족시켜달라고 외치지만 말아야할 것이다. 나 한사람, 우리 집단의 자유와 권리주장이 백성 전체에게는 利보다 害가 될수도 있다는 면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지않으면 나라가 안된다는 헛된 욕심도 버려야한다.
무엇이 빨리 성취되지 않고, 기분이 다소 언짢다고 해서 질서를 파괴하고 기물을 부셔버린다면 결국 손해는 누가 입게 되는가를 생각해볼 일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교훈을 한번쯤 음미해봐야 할 것이다.
더이상 무질서와 혼란은 없어져야 하겠다. 주인노릇을 하려면 하인에 앞서 위엄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나의 자유와 권리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도 꼭같이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근 40년만에 모처럼 주인자리를 되찾게된 문턱에서 매사에 졸속보다는 신중을, 단기완성보다는 대기만성쪽을 택하는 마음의 느긋함과 지혜를 구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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