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큰 고통이더라』
K는 남편을 잃고 우는 친구 앞에서 도무지 노력을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 결국 철저하게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끝내 눈물을 포기한 채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말했다.
『그것은 실망이기 보다 배신감이기도 했어. 내 이상에 대한 배신감이지. 정말 내가 생각한 나는 이런 여자는 아니었어. 슬픔은 때로 진실하고 같은 짝이지. 눈물은 진실의 표현일 수도 있어. 그런데 친구의 비극 앞에서 그것도 결정적인 비극 앞에서 조차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거야. 마치 조금도 친구와 슬픔을 나누고 싶지 않는 사람처럼 눈물대신 땀을 흘렸지. 야 이것은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비극이야. 지금동안 내가 살아온 광막한 삶의 청사진이 눈물을 흘려야할 자리에서 땀을 흘리고 선 내 모습일거야』
조금 흥분은 했지만 결코 수다나 과장이 아닌 K의 좀 장황한 독백을 들으며 그것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K는 그래도 진지했다.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미워하고 드디어 이상적인 자신에 대해 배신감까지 느끼는 진솔한 자기반성의 괴로움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우 냉철한 자기태도에 대해 오히려 안심하고 더욱 미혹치 않았다는 점에서 품위를 지켰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이런 저런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감각과 무미건조는 사실 살 속에 썩은 고름을 넣고 있는 것보다 나쁜 일인지 모른다.
상처는 신음소리라도 내지만 무감각은 아예 삶의 어떤 형태도 충전되지 않는다. 시멘트 바닥에 씨앗을 뿌린 것처럼 그렇다. 마치 허수아비 앞에 총을 들이 댄 것처럼 표정이 없다.
오늘의 사람들은 너무나 어이없고 너무나 기막힌 일들로 둔해지고 껍질이 두꺼워져서 진실이 가 닿으려면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파고 들어가려면 들어가려는 진실이 먼저 깨어지고 피를 흘려야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물은 진실의 회복이며 엄숙한 자기응시다
K가 그렇게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 안에서 끌어내려고 한 그 눈물은 아기가 넘어져서 우는 그런 눈물은 아니다. 그 옛날 보릿고개를 넘으며 굶주림으로 흘리던 그런 눈물도 물론 아니다.
참된 인간성의 양심을 깨우려고 몸부림친 한순간의 자기 확인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깊이 잠들어 버린 어쩌면 아주 죽어버리고 암장되었을 진실의 연분홍 살결을 그리워하며 K는 없어진 줄도 모르고 상실해버린 아픔에 대해 뒤늦게 메마른 통곡을 나에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어디에서 찾아 올 것인가.
눈물은 기실 이빨하나보다 손가락하나보다 더 귀중한 인체의 한 부분인지 모른다.
가장 아름다운 화해 나눔과 위로의 사랑 감동되는 진실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내적 자유이며 겸허하고 유순하게 일치를 이루는 생명의 피 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절대로 한순간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감상의 꽃이지는 않는다.
눈물의 은사라는 말도 있다.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그래도 자기응시가 순결하고 순결한 만큼 성찰의 시간 안에 머물게 되므로.
십자가 앞에 서기만하면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내 의지로는 적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차츰 나의 마음은 욕심과 의심의 이물질이 눈꼽처럼 더럽게 끼이기 시작하고 오만과 불만까지 곰팡이처럼 피어나기 시작했었다.
어느 날부터 적어도 보기에는 세련되게 눈물이 자취를 감추었다. 더 행복해진 것이 없었는데도 십자가 앞에서 조금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어느 날 나를 쳤다. 그리고 강권을 발휘하며 눈물을 찾는 캠페인을 벌였다.
아직도 나에겐 몇 묶음의 무거운 지폐보다 반짝이는 눈물의 보석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지팡이가 될 것이라고 자신을 다그쳤던 것이다.
막혀버린 눈물의 통로, 가리워진 익명의 시간 속에서 우리들이 찾아야할 것은 아픔이다.
최루탄으로 흘리는 억지 눈물이 아니라 진실의 회복으로 터져 나오는 내면의 자각. 온몸으로 느끼는 살아있는 눈물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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