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산으로 가는 길목에 흠뻑 핀 코스모스를 보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면서도 꽃의 생명력에 경탄하게 된다. 새까만 작은 씨앗에 쥐죽은 듯 숨어있던 생명이 위대한 탄생을 보란 듯이 알리기 때문이다. 피었다 사라질 들꽃보다 더 많은 은총과 혜택과 가능성을 받았다는 우리네 인생들, 그러나 조락의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또 젊고 건강한 친구들에게 너무도 쉽게 닥쳐왔었음을 기억해 본다.
성서의 달란트의 비유 (마태25, 24) 대로라면 하느님의 요구는 우리의 능력껏 정성을 다해 살으라는 말씀일 텐데 과연 나는 어떠한가? 공짜로 하사받은 내 몫의 재능을 게으름과 무지만을 핑계 삼거나 이웃의 것만을 환상적으로 추구하고 속상해 하다가 땅속에 썩히고 있지나 않은지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내 몫보다 더 많은 것을 꿈꾸는 과욕과 별것도 아닌 것을 자만하고 또 진짜 나의 몫을 모른 채 그림의 떡이나 바라본다면 어찌될 것인가! 재능은 필시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했다. 많고 적음이 하느님께서 하실 추수의 척도가 아니라, 제 몫의 재능을 얼마나 계발하고 이웃과 세상을 위해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면 자 이쯤해서 지금까지 농사지은 것의 셈을 밝혀봄이 어떨까. 내 분수와 재능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그리고 실수를 두려워해서 땅속에 묻어 두느니보다 차라리 그것을 자꾸 사용해보자. 비록 들꽃처럼 살다 갈지라도 제몫을 활짝 꽃피우는 인생이라면 영원의 추수 밭에 풍년이 들것이고, 남의 집 추수더미를 마냥 부러워만 할 것도 아닐 것이다.
치명산으로 가는 길목에 흠뻑 핀 코스모스를 보면 인생의 가을이 생각난다. 유요한과 이누갈다의 생애가 치명산에 살아있고, 사제직을 수행하다 하느님께로 가신 여러 신부님들의 묘소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묘비의 글귀를 생각하면서 언젠가 나의 삶을 셈 바쳐야할 그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계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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