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사에 있어서 1968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로 평가될 수 있다. 이해에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 협의회가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복식이 있었으며, 한국정의평화위원회가 출범했고, 강화도 심도직 물 사건에 대항해서 주교단은『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성명을 통해 정의구현을 위한 교회의 결의를 분명히 해주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정신을 이 땅에서 구현하고 하는 구체적 노력의 표현이었다.
당시 주교회의에서 전국 평협을 인준하고 평협이 건의한『한국 평신도의 날』의 제정을 승인한 것은 평신도 사도직의 실천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소산이었으며, 평신도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공의회 이전의 교회에서는 평신도를「듣고 따르는 교회」로 파악하거나「기도하고 헌금하는 존재」로 제한하여 인식해왔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의 교회에서는 평신도의 고유한 영성을 강조하고, 평신도를 통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수 있음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평신도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이 새로운 인식을 기초로 하여 주교단은 한국의 평신도들에게 공의회 정신의 실천을 강조하며, 평협의 발족과「평신도의 날」의 제정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로써 한국교회는 오늘에 이르러 전국 평협 창설 20주년과 제21회「평신도의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평협과 평신도들은 지난 20년 동안 교회의 발전과 자신의 성숙, 그리고 민족공동체의 성화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전개해 왔다. 그동안 평협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겨레에게 선포하는 데에 매진해 왔으며, 공의회 정신의 보급을 위한 교육운동, 시성시복운동, 사회정의 구현운동 등을 통해 한국현대교회사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해 왔다. 그리고 신뢰회복운동의 전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민족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평협과 평신도들이 전개했던 이 일련의 활동들은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20여년의 경륜을 쌓아 성년의 단계로 접어든 현대교회의 평신도운동이 더욱 성숙되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의 원칙과 문제점들을 거듭 확인 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한국교회는 평신도의 고유한 영성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계발을 위해 더욱 큰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직자의 영성이나 수도자의 영성과는 다른 평신도의 고유한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평신도들이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삶과 믿음을 일치시킴으로써 실천할 수 있는 영성인 것이다. 이 평신도 영성에 대한 그침 없는 강조를 통해 삶과 믿음의 분열을 막고, 삶의 마당에서 자신의 믿음을 항상 실천하는 건강하고 떳떳한 평신도상의 확고한 정립이 계속해서 요청되고 있다.
둘째로, 오늘의 교회는 평신도의 책임감을 확인하고 더욱 고취해 나가야 한다. 신도들은 자신이 교회의 중요한 일부이며, 복음 선포에 있어서 공동의 주역임을 투철히 인식하고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 이로써 오늘의 신도들은 한국교회 창설기에 신앙의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모범을 따를 수 있고, 공의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평신도의 자랑스런 영성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하느님 백성 상호간에 더욱 큰 이해와 신뢰를 다져가야 한다.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며 자신의 고유한 직분을 실천해 갈 때 우리 교회는 더욱 성숙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호간의 이해와 신뢰를 실천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써 교회당국에서는 교회기관의 종사자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요청된다. 평신도의 신분으로 교회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이 자신의 직분에 대한 전문직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직장에서의 신분을 보장받으며, 자신의 봉사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때, 하느님 백성 상호간의 이해와 신뢰는 증거 될 수 있고 다져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원칙의 확인과 실천에 관련하여 우리는 현재 평협에서 전개하고 있는 신뢰회복운동을 주목에 보고자 한다. 평협의 신뢰회복운동은 그리스도교적 윤리관에 바탕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한국사회에 심기 위한 노력이며 신도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화해와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여「이 땅에 빛」이 되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를 보장하고자하는 강렬한 각성이며, 개인적 사도직과 조직적 사도직을 동시에 실천하고자 하는 결의인 것이다. 신뢰회복운동은 평신도의 영성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뜻 깊은 시도인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자신과 민족의 성숙을 위해 전개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운동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제21회 평신도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날을 제정한 원래의 취지를 거듭 확인하며 평신도운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다시금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평신도의 영성과 책임의식의 고양을 통해 신뢰회복운동의 성공적 진행을 다짐해야 한다. 이러한 점검과 다짐을 통해 우리 교회는 민족을 위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증거하고 선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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