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목욕탕 이야기를 해서 쑥스럽지만 단골로 가는 목욕탕에서 자주 교회를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목욕탕에서 육체의 때를 씻고 교회에서 영혼의 때를 씻으려니 목욕탕에서 교회를 생각하는 일이 영 엉뚱한 것은 아닐성싶다. 목욕실의 벽에는 샤워용 호스가 붙어있어 필요할 때만 물을 받아쓰면 될 텐데, 아주 틀어놓고 아까운 물을 그냥 버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찬물도 아닌 더운물을 그렇게 버리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지금 가뭄으로 식수 곤란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고 하던가.
욕조 안의 물을 자기 기분에 딱 맞도록 뜨겁게 혹은 차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직 자기 본위로만 사는 사람들 특이한 체질의 자기에게는 조금 뜨겁거나 차게 느껴져도 대부분의 다른 손님들이 그대로 쓰고 있으면 따라하는 것이 좋을 텐데도 자기 혼자를 위해 더운물을 더 틀거나 찬물을 더 트는 사람들의 그 지극한 자기 본위가 두렵다.
자기 몸의 때를 꼭 때밀이에게 맡기는 사람도 있다. 너무 편리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 중 환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제 몸의 때 하나를 손수 씻지 못한단 말인가. 돈이 아무리 있기로 그렇게 끝간데 없이 편리하게만 살아가는 것을 어찌 문화생활이라고 할 것인가.
요즘 목욕탕은 옛날처럼 때만 씻는 곳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목욕탕에 와서 희한한 동작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어떤 손님은 욕실 바닥을 수십 바퀴나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떼굴떼굴 굴러다니다가 물구나무를 서서걷기도 한다.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한쪽 구석에서 맨손체조를 하는 정도야 좋지만 손님 사이를 비집고 기어 다니다 굴러다니다 거꾸로 서서 걷는 몰골을 상상만 해도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어쩌다 토요일오후나 일요일 낮에 목욕을 갔을 때의 어린이의 극성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욕실 안을 그대로 때지어 뛰어다니며 떠들고 장난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욕조 안에서 헤엄치고 물장구치고 자멱질하는 난장판 때문에 어른들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어린이가 모두 보호자를 따라왔다는데 있고, 그 젊은 보호자들이 한사람도 자기 아이를 나무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0대의 우리들은 그렇게 자라지 않았고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면 이러한 목욕탕 풍경을 보면서 나는 우리교회의 어떤 일을 생각하게 되는가. 미리 말하지만 우리교회란 우리 가톨릭교회 전반적인 사정이지, 내가 나가는 우리본당이 아님을 밝힌다.
사실, 나는 우리교회 전반의 사정을 조금은 알고 있고, 또 진실로 우리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임을 밝힌다.
우선 도시본당과 시골본당, 도시라도 부유층이 사는 곳의 본당과 그렇지 못한 본당의 현격한 빈부차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뭄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식수가 없어 쩔쩔매고 있는데도 도심지 목욕탕에서의 우리교회의 불균형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면 외모는 으리으리하게, 내부는 지극히 호사롭게 치장되는 도시 성전 짓기에 골몰할게 아니라, 그 돈을 어렵고 가난한곳 의 성전 건립에 돌릴 수 있는 아량과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같은 교구 안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있어, 지금 유효 적절히 활용되고 있겠지만 교구와 교구끼리의 협조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교회에서 마저 누구는 더워 죽고, 누구는 얼어 죽는 모순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명백히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성전이 없어 걱정이 태산 같은 신설교회가 있는가 하면 턱도 없이 호사를 부리고 낭비를 일삼는 교회가 있다면 하느님이 노하실 일이 아니겠는가.
그 다음 교회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자기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비난하는 일부 평신도들의 자세가 마치 목욕탕의 물 온도를 자기 기분에만 맞추려는 사람만큼 딱하다는 것이다. 교회안의 온갖 불협화음과 갈등이 바로 이러한 일부 신자들에 의하여 야기되기 때문이다.
자기 몸의 때를 꼭 때밀이에게만 맡기려는 목욕 객처럼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일부신자를 생각하게 된다. 말을 거꾸로 돌리면 아무리 열심한신자라도 돈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푸대접을 받는가 하면, 신심이 약하고 교회공부도 않고 교회활동도 않는 신통찮은 신자인데도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있다고 해서 턱없이 우대받는 일이 있지는 않는지 우리 교회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주로 사제나 평신도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될 때 생기기 쉬운데 사실 이는 지극히 주의해야 할일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언제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 많은 사람을 우대했던가. 돈이 있다고 편리하게만 살려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을 옳게 섬기는 사람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이들을 잘 깨우쳐 줄지언정 맹목적으로 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목욕탕에서 목욕보다 희한한 동작의 딴 운동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받는 사람처럼 교회에서 영혼의 때를 벗기고 신심의 성숙과 쇄신을 기하기보다는 다른 일에 더 큰 목적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야 다른 일에 목적을 가지고 나왔지만 언젠가는 신앙인 본연의 임무나 사명을 깨달아야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주일미사에 정성들여 참례하고, 레지오마리애 등 각종 교회활동에 동참하는 일이다.
목욕탕에서의 어린이의 난장판은 교회 안에서의 사정이 비슷하니까 부모들의 각별한 주의가 있어야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평신도의 날이다. 우리는 우리평신도의 사명을 평신도의 날을 맞이해서 더 깊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영성을 쇄신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봉사하고 그들과 친교 함으로써, 종국에는 하느님께 우리 전체를 봉헌하는 것(사제직), 세상의 복음화에 신명을 바치는 것(사제직), 세상의 복음화에 신명을 바치는 것(예언직), 하느님의 정의의 도구로 봉사하는 것(왕직)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세속 안에 살면서도 교회와 세속의 중간자임을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