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피정을 할 때 가끔씩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자기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고서 하는 프로그램이다. 자기의 유언을 직접 써보는 방법, 자신의 시체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조사를 낭독할 것인지 미리 써 보는 방법, 24시간 후엔 죽게 되는데 총재산 1백만원으로 꼭 하고 싶은 것을 세 가지만 적어보기, 자신의 묘비에 새길 글귀를 적어 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해 느껴보고 생각함으로써 현실 생활을 반성할 기회를 얻을뿐더러 알차게 꾸려갈 의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학사님들 몇 분과 지리산 산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벽소령인가 하는 곳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길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길을 잘못 들게 되었다.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3시간동안, 때마침 몰아친 비바람과 공포와 싸우며 기다시피 걸었다고 기억된다. 『이렇게 해서 죽는 것이구나. 방송이나 신문에 났던 조난사고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 때문에, 아마 그 때처럼 정신없이 매달리고 간구했던 기도는 없었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그 길을 벗어나 보니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이 빤히 보이는 것이 아닌가!
가끔씩 그 때 생각을 하면, 살았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3시간 정도의 기간에 나를 사로잡았던 생존욕, 진지한통회, 가족과 친지의 중요성, 교회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사랑, 어쩔 수 없는 포기와 의탁, 죽음을 받아들인 뒤의 평화 등을 생각해 볼 때 인생을 한 번 더 산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죽음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의 인연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에 진짜 소중한 것들에 대해 참으로 귀한 줄을 알고 아쉬워할 줄 안다는 점에서 죽음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큰 수단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인생은 죽음을 연습하는 시기, 임종을 예습하는 기간, 그리고 억울함, 슬픔, 고통 때마다 죽음을 연습하라』했다는 플라톤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위령의 성월을 지내면서 한번쯤 죽는 연습을 해 봄직하다.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셈해 보고 보다 값지게 남은 시간을 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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