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감자」라는게 있다. 밥 위에 얹어 찌거나 껍질째로 조려먹기도 하는 올망졸망하게 생긴 알감자가 바로 「돼지감자」다. 생긴 모양은 귀엽고 앙증스럽기까지 한데 이름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돼지감자」일까. 모르긴 하되 가축용, 특히 돼지사료용으로 많이 쓰여지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축」과 「사람」이 같은 것을 먹다니 좀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까만 윤이 나도록 반질반질하게 조린 햇 돼지감자는 먹어본 사람만이 그 감칠맛을 안다. ▲그 「돼지감자」가 최근 데모와 농성의 핵심주제로 떠올랐다. 「돼지감자 피해보상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농성에 나선 사람들은 1백여명의 농민들로 이들의 농성장은 바로 명동성당 마당이었다. 유명해진 이름 덕분으로 농성장으로 선택된 명동성당 일대는 이들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울려대는 꽹과리 소리로 술렁거림을 보였다. 그러나 그 술렁거림은 불과 얼마전과는 양상이 달랐다. 이들의 호소를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은 명동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 불과 20%를 넘지 못했다. ▲셀마의 강타와 엄청난 폭우의 피해는 돼지감자 피해보상을 추구하는 농민들의 아픔을 위축시켜버린 모양이다. 삶의 근거를 모두 잃어버린 재난의 주인공들에 비해 농작물 피해보상의 상처는 경미한 상처로 받아들여졌다고 할까 어쨌든 뙤약볕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이어지던 농민들의 시위와 농성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계속되는 수해피해 상황 속에서 그들은 때를 잘못 만난 자신들의 불운을 한탄하면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힘없이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KBS 보도만을 믿고 무작정 돼지감자를 심었다는 이들. 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공영방송사의 방송내용을 그대로 믿고 실행했다는 사실밖에 없다. 방송의 권고를 믿고 그대로 따르는 순박함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 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소박한 믿음, 그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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