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계약서에 도장을 날인한다든가 서명을 해야한다. 계약서가 법적으로까지 보호를 받기위해서는 등록된 도장을 날인하고 인감 증명서까지 첨부해야 한다. 도장의 위조라든가 도용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사건을 자주 볼 수 있다. 인간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정거인 도장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믿음도 구약이나 신약과 같이 약속의 관계라고 한다. 인간이 먼저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음으로써 주님과 친분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에 주님과 인간이 맺는 약속은 보통 약속과 달라서 은약(恩約)이라고 한다. 그러면 안보이는 주님과의 약속을 확인하고 보증해주는 「도장」이 있어야만 믿음을 확실히 갖게 하고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예수님의「도장」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은총으로써 구원을 마련하시고 우리가 그 은혜를 만민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세상 만민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를 주며 (마태 28장)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사도행전 1장). 세를 준다는 말은 물론 형식을 갖추는 듯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세는 그리스도와 같이 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 즉, 현대판으로 강생시킨 그리스도(모습)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생생한 증인이 없어지면 교회도 없어지는 것은, 교회는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볼 수 있는 「도장」과 같기 때문이다. 도장이 날인되지 않은 문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이 증인이 없는 교회도 무기력한 골동품과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볼 수 있는 교회라고 할 때 교회 즉, 신자들의 착한 표양이 제도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성사 이상으로 필요한 생활 성사가 됨을 잘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지 않고 밑는자는 더욱 행복하다는 말씀이 하나도 안보고 믿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없음은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으로 입증이 된다. 상식적으로 보나 성경상으로 보나 보아야만 믿을수 있음을 깨우칠 수 있다. 주님께서 기적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진실됨을 즉 믿을 수 있음을 증명하여 주셨음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열두 제자가 모두 보고 믿었잖았는가? 보는 것이 믿음이 아니더라도 보아야만 믿을수 있다.
(2) 예수님의 「인감도장」
우리 교회의 쇄신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생활하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오늘에도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론과 형식을 떠나서 생활로써 보여주는 마더 데레사 수녀와 같은 분이 있다. 이런분이 아니었던들 20세기 후반기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구실을 못 하게되고 무기력하게 되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없이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하게 살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분이 오늘의 가장 큰 은총이라고 함도 과장이 아닐것이다.
우리는 수도자가 아니라고 하여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비교적 부유하게 살면서도 이론과 설교로써 복음을 전하는척하는 지도자가 나 자신일수 있다. 우리는 수도자가 아니므로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부유하게 살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너무 율법적으로 이해하는 소치라고 보는 것이다. 복음적으로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신자는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신자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지도자들이 비용이 많이드는 취미생활을 하고 운동을 한다는 비평을 할때, 나 자신부터 변명을 늘어놓기가 일쑤이다. 건강을 위하여 보약을 복용할수 있다면 같은 건강을 위하여 부유층이 즐기는 취미를 갖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변명을 하게 된다. 한편 한차례의 운동경기에 필요한 경비가 중학생 한명의 일기분 등록금에 해당되는 거액이라고 한다면 비난하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참다운 지도자의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다.
문제는 나눔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숨겨져 있을 것이며 절약과 희생이 없이는 나눌 수가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교구와 교구, 본당과 본당 사이와 교우들간의 나눔이 없이는 주님의 모습이 드러날수 없기 때문에 교회법적으로 그어 놓은 경계선이 복음적 사랑으로 용해되는 날이 온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려운 교구나 본당을 도와주지 않으므로 어려운 곳의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고통보다도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소치라는 것이다. 너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미하게 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나의 제자임을 알아본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보이는 교회의 가장 큰 몫은 형제애의 실천이며 형제애의 실천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이며、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모습이 바로 믿음의 기틀이며 확인 역할을 해 준다고 보는 것이다. 형제애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신자는 복음적으로 살기 때문에 형제들을 위하여 소박하게 살게 된다.
신자들의 검소하고 서민적인 생활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주님의 참된 모습이 드러나게되며 주님의 증인이 나타나서 많은 이웃들을 주님의 품안으로 이끌어 들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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