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다는 한탄이 저절로 나오고 있다. 하늘은 이 작은 한반도에 무슨 한을 그리 많이 품었기에 장대같은 물줄기로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을까. 마치 순서를 정해놓고 한방씩 먹이는것 같아 아직은 안전권지대에서도 안심을 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올지 감조차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하늘(자연)의 조화는 그 누구도 풀어내지 못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치고 멀쩡하던 바다가 해일로 변신하며 잔잔하던 바람이 태풍으로 돌변, 인간을 위협했다. 과학과 문명의 깨우침이 아직 부족하던 당시, 지진·홍수·태풍 등의 재해는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 받아들였다. 말뜻 그대로 하늘의 재화와 땅의 괴변은 어떠한 상처를 입없다 하더라도 숙명으로 여겼다.
자연의 끊임없는 도전에 시달려온 인류는 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수세기를 맞서왔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영장으로서의 지혜는 자연의 도전과 시련을 다스리고 대처하는 것으로 문명세계를 만들어냈다. 고도의 과학기술, 최첨단 과학기재의 개발로 천재지변의 조화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그날이 바로 눈앞에 와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인간의 무기력, 보잘것 없음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반년동안 내려야 할강우량이 불과 하루동안에 쏟아지는 이변, 시도때도없이 조그만 땅덩어리 곳곳을 치고 받는 태풍의 폭력 앞에 발가벗기운채 내동댕이쳐진 존재,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인가. 이 모습은 수년전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니 그보다 더 수년전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발버둥치며 이룩해놓은 과학문명의 이기도 우리에겐 적용되 않는단 말인가.
물론 기상이면·재해가 우리만의 전유물로 아니다. 지금 이 시간 세계곳곳에서 폭우·폭염·가뭄이 인간의 존엄을 한도없이 위협하고있지 않은가. 인도에서, 이란에서, 그리이스에서, 뉴욕에서, 그리고 로마에서 인간을 조롱하듯 자연의 폭력이 쉴사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세계의 재해들이 동병상린의 아픔으로 우리의 마음을 달랠수있을까. 결코 아니다. 동병상린으로 위안을 받기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다. 자연의 폭력으로만 치부해버리기엔 참으로 억울한 구석이 많다. 기상대의 늑장 예보가 그렇고 긴급상황
에도 느긋한 해당지역 관계당국자들의 태도가 그렇다. 억울함은 또 있다. 자연을 다스려온 제반행정의 허세·자연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의 정직함 앞에 속임수로 일관해온 일선행저의 실체가 자연의 분노 앞에 여지없이 속을 드러내 보인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재해의 실체다. 당연한 귀결이자 섭리가 아닐수 없다. 세계 제일, 아시아의 최고를 앞세우고 승승장구 올라가는 마천루, 전국을 누비며 번듯번듯하게 닦여진 도로를 보며 스스로 도취해있는 동안 가려진 어두움의 함정은 그만큼 비대해질수 밖에 없었으리라.
단 한번의 폭우로 그럴듯하던 국도가 날아가버리고, 하수도 배수펌프가 막혀버리고, 위풍당하던 야산과 하천제방이 맥없이 무너져내린 이 엄청난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차한 설명을 달지않아도 얻을 수 있는 정답은 오직 하나, 외화내빈이다. 외화내빈의 치적은 인간의 눈을 가릴수 있어도 자연의 누까지 가릴수 없는 법이다.
한강의 기적은 한강본류의 정비만으로 이룰 수 없다.
본류를 중심으로 거미줄같이 펼쳐 진 지천들을 내버려둔채 치수를 다했다고 말할수 없다. 태풍 셀마를 선두로 충청지방의 집중호우, 다시 서울 경기도 일원을 강타한 재해의 참화가 이를 웅변해 주고 있지않은가.
상습적인 피해, 상습적인 복구의 악순환은 이제 끝장을 봐야한다. 무덤에 회칠하듯 겉만 요란한 행정은 지금부터 바로 잡아야한다. 오직 정직과 진실함으로 자연의 위력 앞에 정정당당히 맞설 수 있는 행정의 회복만이 우리 모두를 살려낼수가 있다. 굳어가는 마음을 풀게할 수 있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 이전에「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속 깊이 새겨야하는 것도 이제부터다.
『할 말을 잃었다』『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재해 현장을 다녀온 기자들이 취재기자의 직분 수행에 앞서 함께 울 수 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운 고백은 현장의 참담함을 그대로 읽게 해주고 있다.
무자비한 폭우를 「천재」(天災)로 진단하면서도 기자들은 줄일수 있는 천재를 그대로 방치한 겉치레 행정·직무태만을 들어 「인재」(人災)라고 증언하고 있다. 기자들은 또 인재를 동반한 천재라 하더라도 당장 재해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삶의 터전과 젓줄을 깡그리 빼앗겨 버린채 넋놓고 앉아있는 그들의 상실된 의지를 되살려주는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행히 교회는 이번 재해를 기해 민첩한 지원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재해를 입은 교구를 포함, 모든 교구가 특별헌금을 실시하고 의연금품을 모금하는 등 형제애와 사랑을 집약하고있다.
이에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전국 인성회 서울 사회복지회 실무자들과 수도회 단체 등에서 현지를 방문, 재해민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당연하고 또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아무리 주어도 넉넉치 않으것,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나누어야할 사랑이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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