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지낸 1984년은 한국교회 전체의 경사였다. 2백년간 집약되어온 한국교회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마당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교회 구성원 가운데 제일 신바람 난 계층은 평신도였다.
교회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대행사, 축제를 무리 없이, 멋있게 치러 냈다는 자신감이 평신도들의 신바람을 부추겨 주기도 했다. 4천만을 넘어선 전체 인구수에 비해볼 때 2백만을 밑돌았던(84년 당시 신자율) 5%의 복음화율, 그 소수집단이 표출해낸 2백주년의 모든 것은 자신감과 긍지를 채워주는 충분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2백주년을 전후로 한국교회의 성장세는 매년 상향곡선을 그려냈다.
이미 여러 번 거론되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반복하진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초기 한국교회 설립에 밑거름을 이루었던 초기교회 평신도들의 스토리는 한국교회 역사 그 줄거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신앙공동체로 성직자가 없는 교회를 이끌었고 모진 박해와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 우리의 선조 평신도들의 이야기는 2백주년과 더불어 오늘 우리가운데 생생하게 살아있게 되었다.
초기교회 선배 평신도들의 뜨거운 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에 우리의 자긍심은 그 빛을 발할 수가 있는 지도 모른다.
2백주년과 더불어 새롭게 발견한 우리 평신도들의 자긍심이 오늘 현재, 어떤 형태로 교회와 사회에 비춰지고 있을까. 제21회 평신도의 날을 보내면서 또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11개월 앞둔 현시점에서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려보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객관적으로 보여 지는 평신도상은 우선「열심」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본당일ㆍ단체일에 있어 극성스러울 만큼 열성을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지적해 볼 수 있겠으나 대개는 열심한 평신도상으로 그려내는데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다음은 비교적「착한 편」에 속한다고 말들 하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지시등에 대해 어긋나지 않는 조신함을 착한 평신도로 볼 수 있다면 교회의 요청이라면 순명정신으로 다소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따르겠다는 자세 역시 착한 평신도 상으로 구분이 될 수 있다.
열심과 착함으로 집약되는 우리의 평신도상은 자타가 함께 인정하는 오늘, 한국의 평신도상이라 진단할 수 있다는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의 평신도들이 활약하고 있는 분야는 교회전반에 걸쳐 참으로 다양하다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라는 커다란 디딤돌을 딛고선 60년대 후반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신도들의 획기적이라 할 만큼 양적으로 팽창되었다.
미사해결ㆍ독서낭독ㆍ성체분배ㆍ강론 등 전례에서부터 주일학교교사ㆍ예비자교리ㆍ사목협의회ㆍ구역반장 등 교회 여러 직무들 그리고 최근 들어 큰 폭으로 신장한 각종 평신도 단체와 기관시설에 이르기까지 평신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동안 몇 배로 늘어난 교회건물시설들 역시 늘어난 교세를 반영해 주고 있고 이와 함께 평신도들의 중요한 임무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하겠다. 교회 운영에 있어 성직 수도자와 함께 공동 책임분야가 크게 확장되었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평신도 스스로에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 자화상이 모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지칭하던「병신도」라는 명칭은 평신도들의 자괴감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성직자, 수도자들에 협력하고 더불어 일하면서 평신도들은 자신의 확실한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교회의 최 일선에서 또는 사회와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맡은바 사명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왔지만 자신의 사명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직무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인식이 바탕에 없었다면 평신도들이 느껴야할 자괴감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된다.
이는 거듭 거론되어온 사실이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이 명시하고 있는 평신도상이 보다 많은 평신도들에게 교육으로 전달되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한국의 평신도운동이 2백년이란 세월 속에 가다듬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뚜렷한 방향이 정립되고 있지 못한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적인 팽창에 미처 따르지 못한 질적인 향상을 깊이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할 때가 바로 지금 인 듯싶다. 평신도들이 자기의 정당한 몫을 정확히, 확실하게 찾고 이를 수행해 나간다면 교회의 제도적인 장치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요청에 앞서 평신도 스스로 그 자리를 마련해 갈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봉사의 질을 높이고 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평신도 자신의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교회력으로는 11월 27일, 우리는 이미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 다가올 89년은 서울 세계 성체대회가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우리 평신도가 맡아야하고 이미 투신하고 있는 분야는 참으로 방대하다. 84년 이 땅의 평신도가 느꼈던 자긍심을 다시 한 번 부활시키기 위해 한번쯤 깊은 묵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평신도의 자긍심이 외형적인 포만감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과정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가 만일 평신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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