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못 살어유. 이사가야지』
『농사꾼이 땅을 떠나면 무얼먹고 산당가! 살어두 여기서 살구 죽어두 여기서 죽어야지』
『그럼 어떻게 헌대유? 논이구 집이구 그냥 통채로 없어졌는디. 여기서 농사짓기는 다 틀렸유』
『그래두 고향은 못 떠나』
하루아침에 전체 9만평의 농토중 8만평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42세대 1백50여명의 주민들.
박해시대부터 교우촌으로 알려졌고 지금도 교우들이 동네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수암리 마을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전답들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 마치 화산지대를 연상케 했다.
서천읍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동네로 이르는 길독이 모두 파손되거나 물에 잠긴 탓인지 나흘동안 외부와 고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서천본당 주임 백승옥 신부와 기자가 7월 26일 아침, 허리까지 차는 물길을 헤치고 3시간의 강행군 끝에 도착한 것이 피해 이후 수암리의 첫 방문객이었다.
이번 피해로 인해 숨진 이웃을 장레지내고 마을회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폐허고 변한집과 농토를 바라보고 있던 주민들은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듯 고개만 젓고 있었다.
『물이 빠졋을 때 우리들은 다른 곳으로 몽땅 떠내려 온 줄 알었어유. 그런디 이렇게 변한곳이 우리땅이었다니.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유』
나흘동안 남은 양식을 서로 나눠먹으며 또 부서진 집에서 같이 지내왔다는 수암리 사람들은 외부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는 구호의 손길이 전개되는지 조차 모르는채 그저 없어진 농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래두 우리는 좀 나은편유. 저쪽으로가면 우리하고 비교도 안돼유』라고 자위하는 수암리 사람들을 위로하고 돌아서는 발길이 천근의 무게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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