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하느님을 신뢰해왔다. 항상 그분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어지는 그분의 섭리를 감지하고자 노력해왔다. 위기의 순간들을 만날 때면 나는 그분의 뜻을 찾았고, 능력이 닿는데 까지 최대한 그것을 따르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함정은 그 모든 결단과 노력, 모든 수행의 고삐가 내손에 쥐어져있다고 보아 왔던데 있었다. 그분이 바라셨던 것은 내가 가정한 상황에의 충실이 아니라, 닥쳐오는 모든 상황을 받아드리고 온전히 그분께 의탁하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러시아로 파견됐던 월터ㆍ취제크 신부의『나를 이끄시는 분』의 일부이다. 그는 23년간 시베리아 탄광과 강제 노동 수용소, 비밀경찰에 의해 갖은 모멸과 수치를 체험하면서『고통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 뜻을 드러내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 자신부터 생각해 볼 때 내 자신의 의지와 지성으로 설정한 어떤 일에 충실하는 것으로써 대단한 신뢰를 드린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지만 그러나 그런 희생이나 수행은 자기가 가정한 상황에서의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이 아닐까? 정말 모든 상황, 모든 장소, 모든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은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이젠「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피정 때 어느 신부님의 하신 말씀 중에, 『누가 만일 조상들로 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잔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잔에 금이 갔다고 해서 그것을 버리겠습니까? 하느님도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실 겁니다』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오래돼서 세련미도 없을 거고 게다가 금까지 갈 정도지만 조상들의 체취와 흔적이 있는 잔을 버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통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평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찌 보면 금이 간 잔과도 같다.
모든 일과 고통을 안에서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지 못함을 아파하는 우리에게, 그 부숴진 채 금이 가고 깨어지기 쉬운 우리 자신을-마치 선조들의 잔으로 물을 마시는 사람처럼-하느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삼으시고, 매일 매일 은총을 세상에 베푸시는 표주박으로 삼으실 거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힘이 나고 기쁨이 생긴다. 부족함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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