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의 공상소설을 쓰고 싶은 충돌을 느끼고 있다. 소설의 주제는 「돈의 여행」이다. 국민학교 국어책에서 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을 할 수 없으나「물방울의 여행」이라는 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물방울이 나무잎에 떨어질때 부터 바다에 흘러 들어갈 때까지의 하나의 물방울이 겪는 사건들을 아주 해학적으로 묘사한 글이었다. 그런식으로 한장의 지폐가 고유번호를 달고 조폐공사의 문에서 나와 폐지창의 불가마에 들어갈 때까지의 그 지폐가 겪는 지폐 소유자들의 형태를, 그들의 마음속을 글로 써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돈을 받는 사람들은 우선은 모두가 좋아하리라”
그러나 기쁜 마음의 뒤안길에는 흐믓한 마음, 두려운 마음 고소해하는 마음, 창피한 마음, 뱃속이 뒤틀리는 마음 등 여러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돈을 주는 사람의 가슴속에도 흐믓함, 두려움, 찹찹함, 비열함, 자만심등 여러가지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돈을 남에게 줄 때에는 우선은 약간의 섭섭함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돈은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기 때문이고 소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 그것을 무덤속에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면서도 살아있는 한 끝까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이다. 그러나 누구나 좋아하는 이 돈은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얻고, 또 어떻게 그것을 쓰느냐에 따라 즐거움과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과 나아가 인간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돈은 세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재화나 서비스를 얻으려할때 필요로 하는 교환수단, 부의 저장수단, 그리고 재화나 서비스를 얻을때 계산의 수단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세가지 기능 이외의 기능을 할 때 그것은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억압의 수단, 비리의 수단으로 사용 된다. 즉 돈을 얻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얻을때 그것은 땀과 노력이라는 분명한 꼬리표가 붙은 것이 되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비리나 투기나 다른사람의 희생에서 생긴 것이다. 이런 돈을 「꼬리표 없는 돈」이라고 이름하고 싶다. 투기를 하여 얻은 돈, 사람의 가난과 긴급함을 이용하여 얻은 돈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이용하여 이 꼬리표없는 돈을 얻는 방법에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 있고, 그러다 보니까 아쉬운 사람, 약한 사람을 억눌러 이런 돈을 얻는 것이 은연중 만연되어 있다. 또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죽어가고 있다. 돈이 없느냐 있느냐를 주로 물을 뿐이지,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는 묻지 않는것이 습관화 되어가고 있다. 범양상선의 엄청난 비자금이 어디로 갔느냐를 언론은 이제 추궁하지 않고 있으며 교회도 돈을 어떻게 벌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있다. 내가 어릴적에는 보리고개때에 쌀 한가마니를 빌리면 추수때 한가마 반을 돌려주는 일이 많았었는데 이런일은 윤리적으로 안되는 일이라고 신부님이 어른들으르 꾸중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대한 사채이자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 다 돈의 맛을, 돈의 위력을 알아서일까? 꼬리표 없는 돈을 많이 모아 교회에 많이내면 좋은 것일까?
돈만 있으면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전화 한통화로 짜장면 한그릇 들고 아파트 15층까지 올라오고, 돈만 있으면 안되는 일도 되고, 음식 날으는 아이들에게 욕을 퍼부어도 괜찮으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 좋은 세상에 모두가 심취해 버린 것일까?
지금의 젊은이들 중에는 경제에는 윤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각자의 이기심에 바탕을둔 체제이기때문에 법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이기심을 발휘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기심을 발휘하여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소비자들은 최대의 인락과 편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가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황금만능주의는 사실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기독교 사회윤리를 바탕으로해서 이루어졌다가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윤리학 교수였고 그가 주장한 인간이 이기심에 바탕을둔 경제는 경제행위를 하는 인간들이 도덕심을 가진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있으며 더나아가 이기심이 정의의 법칙, 즉 이웃사랑의 생명과 인격을 지켜주는 법률에 의해 제한되지 않을 때 사회는 파멸을 면치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독교 사회윤리의 핵심은「황금률」이다.「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는 부정적 황금률이나 「타인이 네게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너도 타인에게 해주어라」는 금정적 황금률은 모두 정의의 법칙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이 정의의 법칙이 경제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기업가, 소비자들의 이기심을 제한하는 도덕률로서 경제윤리의 바탕을 이루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의 약함을 이용하고, 투기를하고, 권한을 이용하여 돈을 얻는 것은 분명히 자본주의의 속성도 아니요, 더구나 도덕적으로 용납되는 것도 아니다.그것이 만일 상대방의 인격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사회의 거래질서를 해친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현대판 죄악이 아닐수 없지않은가?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내가 얻는 돈이 어떠한 종류의 돈인가를 항상 생각하여야 하며 내 호주머니에 들어온 돈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도 부유한 사람은 그만큼 남을 더 도와야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어떻게 부유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우선물어야 한다. 돈에도 분명히 꼬리표는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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