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빨리 오사 어둠을 없이하며 동정 마리아에서 탄생하옵소서…』
대린 시기를 맞으며 부르는 이 성가는 언제나 우리들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상록수 받침에 4개의 촛불을 밝히는 것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년 동안이나 구세주 오심을 기다리며 온통 자신들의 삶을 봉헌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력이 시작되는 이즈음엔 천년 동안 어두움 속에서도 오직 구세주 오심을 기다리던 그 큰 힘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사는 우리 크리스찬의 생활 태도를 돌이켜보게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약하기만한 우리 인간은 주어진 여건이 좋을 때에는 항상 남보다 앞장서는 힘과 용기가 솟아나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이성이 아무런 쓸모없이 경거망동하게 되어버리고,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좌절과 실망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차가와진 마음으로 외면하며, 일하려는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하였던가? 광막한 황야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말씀」과「믿음」만을 가지고 묵묵히 살아가며 절망과 고독 속에서도『구세주 빨리 오사…』를 부르며 그 기대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굳은「믿음」으로 생활하게 된 근원은 오직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희망의식』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보살핌 속에서 어려운 삶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깊은 수렁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며 어둠 속에서도 주님의 뜻에 따라 굳건한 삶을 영위하는 용기가 샘솟았던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퀴바디스」라는 명화 속에서 로마의 네로황제가 맹수처럼 횡포할 때 원형극장에 끌려 나와 마지막 삶을 맹수들에게 빼앗기는 저들 그리스찬 얼굴들은 초기교회,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심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종유별한 종교풍토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절대자에 대한 신앙심이「믿음」으로 시작되는 것보다 온통 기복신앙으로 일관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첫째 요구가 무엇 무엇인데… 그 다음에 또 무엇인데… 또…또…』이렇게 많은 현실에 대한 끝없는 욕구와 갈망 속에서 은근히 절대자와의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종교를 신봉하였더니 불구자인 자식이 완쾌되었다.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서 굉장한 갑부가 되었단다…는 등 화제가 만발하고, 그러한 사건들을 믿고 달려가는 나약한 사람들이 행렬이 끊임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황하는 모습이기도 하다.「감탄고토」라는 옛말처럼 항상 나에게 이득이 있으면 비굴할 정도로 다가와서 아부하고, 아무런 이권이 보이지 않으며 저만큼 달아나는 人之常情i의 단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이와 같이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사고 속에서 생활한다면 열사람의 의인이 없어 멸망하고 말았던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많은 유혹과 불의의 도전속에서 자신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는「양심」의 소리에 늘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웃사랑」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매력 있는 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 말을 배척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매력 있고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말의 실체는 아무에게나 들어나지 않는 것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생명을 의지하여 서로 관계를 가지고 알게 된 이래 이사랑은 끊임없이 문제 되어 왔다. 시인과 문객들의 필설에 소설가는 장황하고 수려한 필치로 철학자는 심각하고 조리 있는 논리로, 음악가는 웅장하고 감미로운 노래로, 화가는 섭세하고 화려하게 화폭에 담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랑은『이것이다』라고 할 만큼 사랑의 모습이 확실하게 들어나지는 못했다.
사랑이란 느낌이 아니라 실천이다. 느낌이 아니기 때문에 느낌으로 사랑을 인식하려고 하거나 달성하려고 하면 그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 사랑은 행동과 더불어 나타난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사랑 하시오(요한)13, 35」
여기서「사랑하시오」하는 말씀은 사랑이 행동이어야 함을 뜻한다. 행동이 없는 사랑은 사치스런 언어의 화장품이거나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을 행동과 연관시켜 본다.「사랑한다」는 말은「아낀다」「귀히 여긴다」「소중히 여긴다」「연민하다」「존경하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 해석하고자한다. 그러면 이러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제41차 세계성체대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었다. 그때 인정 많은 할머니, 인도의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가장 큰 영향을 남기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데레사 수녀님의 가난한 생활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산 웅변이었던 것이다.
내년에 서울에서 제44차 세계 성체대회가 열린다. 요즘「한마음 한몸 운동」이 한창이다. 사랑과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기도, 헌혈, 입양, 결연, 헌미, 봉사활동 등이다. 이 운동에 신자와 비신자까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오늘의 한국은 훨씬 더 좋은 편으로 달라질 것이다.
88년을 보내면서, 구세주 오심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점에서 가난한 형제의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는 「돌」심장을「살」심장으로 바꾸도록 회심하자. 아픔이 없이 이웃을 돕는 부자가 있다면 그는 구호사업은 할수 있어도 그리스챤 사랑을 실천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아픈 예수 마리아 요셉>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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