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6월호에 「신학자가 답한다」라는 난에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을수 있는가?」라는 독자의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 대구 가톨릭대학 교수 이성배 신부의 해답이있었다.
대답에서 그런 행위는 과거 초대교회 때부터 가끔 이 단자들 가운데 있었던 일이었고, 따라서 그런행위를 하는것은 교리에 어긋나는 짓이며 이단이라고 설명 했으니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생각나는 점이 있어 몇자 적어볼까 한다.
우선 이 사람들이 내세우는 성경구절이다.
『죽은 이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런일을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이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습니까?』 (I고린도15·29). 이 성경구절에 따르면 당시 고린토교회에서는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받는 세례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죽은 사람의 부활을 강조하기 위해서 당시 고린토에서 행해지던 관행을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하지않고 다만 사실을 언급한것이지 그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세계의 유명한 신학사전인 가톨릭대백과사전에 나와 있다고 하니 우리 신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어야 하겠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지나간 데가 있다.
질문의 본문에 보면 『요즈음 세례를 받지 못한채 죽은 조상, 가족, 친척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붙어주는 신자들이 있습니다』로 되어있고 또 신부님의 해답 본문에도 『요즈음 일부 신자들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를 받는 행위가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라고 되어있다. 바꾸어 말하면 질문자나 대답자가 이러한 사실이 있다는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본문을 읽어보면 그런 과오를 범하는 사람은 신자들의 탓인 것처럼 되어있다. 그런데 세례를 신자들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받을 수 있을까? 세례는 신부가 주어야지 받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자」라는 말을 「신부」라는 말로 바꾸어보면 『요즈음 죽은이를 대신해서 받는 세례를 주는 신부들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질문자가 두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한사람은 서울이고 한사람은 충주이다. 그렇다면 죽은 이를 대신한 세례를 주는 신부가 여기저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초대교회의 이단자들이 하던 행위를, 그리고 교회에서 이단행위라고 규정짓고 교리에 어긋나는 짓으로 밝혀진 것을 한국천주교 신부들이 어떻게 행하게 되었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신부를 길러낸 신학교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해답을 쓰신 신부님도 본문에서 『왜 요즈음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지 그 배경과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서 해명해야 되겠지만…』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문제는 교회당국에서 권위를 가지고 철저히 조사해서 일반 신자들의 의구심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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