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대가 생긴 이래 최대의 호우로 인한 사상최대의 수해 장면들이 연일 TV에 가득차고 신문마다 꽉 채워질때 내가슴에도 홍수가 쏟아져 내렸다. 아픔이란 홍수가.
그러나 막상 보령·서천·부여·공주 등 피해현장을 직접 보곤 (시간 관계상 논산군은 못 가보았지만) 처참, 참혹, 황폐라는 말들 조차 죽은 언어임을 느꼈다. 그만큼 이 낱말들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폭우가 그친지 10일이 지난 뒤인지라 허리까지 물이 차서 수도(水都)였던 서천시가지는 정돈되어 있었고, 황수(黃水)의 바다, 지붕이라는 고도에서 헬기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들녘은 아직도 수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푸른 생명을 내품고 있어서 약간의 안도감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서천 성당에 갔더니 백승옥 주임신부님은 가톨릭신문 최창우 기자와 함께 수암리 피해공소에 가시고 안계신다. 수녀님들의 안내를 받아 그곳으로 달려갔다.
논 9만평 중 8만평이 초토화된 현장이다. 사망 1명, 부상 4명(미리 대피했었기에 인명피해 적음)의 인명피해를 비롯 여러 채의 집이 파괴 되었고 초토화된 논은 깊이 파이고 돌더미로 변해버려 복구가 불가능하고 복구하려 한다면 그 비용이 새 논을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만큼 기막힌 참상이었다.
신자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공소 마을인 수암리(水岩里). 이름이 잘못되어 물과 바위의 피해를 입었단말인가!하면 서천본당 관내 19개 공소 소재지 마을 중 18개 마을이 수암리와 거의 같은 수해를 입었으니 주님, 주님은 어째서 하필이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신자 마을을 그토록 폐허로 만드셨습니까.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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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물살에 가지라곤 하나 없고 껍질마저 남김없이 벗겨진채 앙상한 몸뚱아리만 드러내고 여기저기 나동그라져있는 수백그루의 큰 나무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수재민들의 실체요 농민의 몰골이었다.
힘없고 주변머리가 없어서였든, 고향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든간에 앞집, 뒷집 모두 대부분 떠나는데도 수십년·수백년 고향에 뿌리를 박고 생존의 농토를 지키다 물에 할퀴고 찢기고 빼앗긴, 그래서 알몸뚱이만 남은 수재민들의 실체요 농사를 지으면 그만큼 빚덩어리만 늘어나기에 실의와 좌절에 찬 농민들의 몰골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화, 산업화에 밀려나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자 산등성이에 판자를 엮어 살다가떼 죽음당한, 그런 참상속에서도 곧 황량한 그곳에서마저 쫒겨날까 두려워하는 시흥 2동 수재민들의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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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여군의 곡창지대인 남산·구룡평야, 세도·규암평야를 가본다. 그 넓고 넓은 들판에는 (남산평야 길이만 8km) 썩은 시신들과 시신들의 썩는 악취만이 가득하다. 벼라는 시신들.
도대체 생명이라곤 없다. 사막처럼 검붉게 펼쳐진 죽음의 땅, 그것이다. 생명이 있다면 수침때 남아있는 작은 물고기들이고 그것을 잡아먹고 있는 속검고 거친매정한 황새들 뿐이다.
벼썩는 악취가 얼마나 심한지 침수되었던 지역에서 1km나 넘는곳까지 매시껍도록 지독하고차창을 열고 갈 수가 없다.
어찌 수해지역의 참상을 더 말할 수 있으랴. 굳이 말하자면 그간 많은 중장비와 인력이 동원되어 도로, 제방등 시급한 것은 임시복구되었고 계속 복구되고 있지만 한두달만에 복구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곳이 복구불가능한 엄청난 재난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도 수침지 전선위에 매달려있는 널검지들, 산중턱 농가에까지 남아있는 황토빛 물자국, 끊기고 잘린채 남아 있는 제방, 다리, 도로들, 붉은 피를 흘리듯 붉은 빛으로 주저앉아 있는 수많은 산사태 자리,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농경지 등이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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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보다도 더큰 상처와 죽음이 여기있다. 수재민들이 당한 마음의 상처와 더욱 깊어진 한 (恨) 이 그것이다.
썩은 벼는 일년 농사망침으로 견딜수 있고 피해지는 복구로써 회복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재나 가난과 소외와 한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당한 실의와 좌절의 아픔은 쉽사리 가실수 없을 것이다.
농민들에게 있어 곡식은 자식처럼 소중하고 농토는 자기의 분신과 같은 것인데 이것들을 잃었으니….
수재민들의 몇가지 한탄사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①『고향을 묻어두고 떠나려해도 당장 농사지을 땅이 있어야지유. 신부님, 간척지를 알선해 주실 수 없으세유?』 (찾아간 본당신부에게 수재민의 하소연)
②『내일이 있어야 살지유. 기왕 잃어버린 것은 잃었다 하더라도 언제 수확의 기쁨을 누려봐유』
③『왜 위험을 모르겠슈. 병원에 가려면 10만원은 있어야되잔아유』 (남아있는 논에 농약을 주러갔다 독사에 물려 수건으로 독사에 물린 발을 묶고 하루가 지나도록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당신 죽기로 작정했느냐』는 본당신부의 말에 답하는 어느 공소회장의 말)
④『농약을 줄곳이 없어졌는데 우리 식구 모두 먹고 죽으란 말인가!』 (남아있는 논에 농약을 가져다 주라는 이장의 말에 벼 전부가 썩어 없어진 농부의 말)
⑤『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난 게 죄고, 재주없는 죄지유』
얼마나 가슴이 저미는 말인가! 정말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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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부로서 못 드릴 말씀이지만 아니 신부이기에 생과 생의 원인까지 저주하던 욥이되어 삼가 하느님께 탄원을 드립니다.
하느님.
당신의 아들이 악마의 자식일때 새 사람, 새 하늘, 새 땅을 이루시고자 40주야 억수로 악인들을 수장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아들, 딸로 고결히 살고파서 빚과 실의의 땅, 고향을 지켜온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기에
여린 목숨들을 흙산으로 덮고 생존의 터전마저 죽음의 땅으로 만드셨습니까.
하느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색마의 자식일 때
참 지리, 참된 삶, 참된 길 밝히시고자
타는 불길로 흔적까지 없애셨습니다.
지금
향락에 만취된 철야성 바벨탑 옆에서
모진 삶 끈질기게 살고파서
바람 거친 산등성에 판자등지 엮어 산것이
얼마나 큰 죄이기에
무거운 바윗돌로 목숨을 앗고 그 작은 가슴에 철거의 공포마저 주십니까.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하느님
제발 더 이상의 재앙일랑 이들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이들은 순하고 착한 당신의 자녀들입니다.
노아의 홍수로 싹 쓸어 버릴사람들
정의의 징벌 불길을 받을 자들은 이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껍질로 권력의 갑옷을 만들어 입은 표범들이요
형제의 피를 빨아 살쪄가는 늑대들이며
혀만 나불대며 현란하게 살아온 앵무새들 입니다.
하느님
더이상 당신의 가장 좋은 걸작들로 하여금 당신을 깨닫지 못하는 실패작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모두 빼앗기고 찢긴나목에 생명의 가지와 푸른 잎을 주소서
이제는 너와 나 하나되어 따슨 손 구슬 땀
함께 하는 마음들과
거미줄 희망으로 내딛는 형제들의 발걸음
가상하게 여기시어
욥에서 베푸셨던 큰 축복으로 질펀하게 누워있는 시신들이 머리들고 일어나
생명의 새옷입고 환희의 송가 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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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이런 탄원을 드릴까.
이제 남은 것은 이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다시 이루어 희망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복구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민·관·군의 대열에 직접 몸으로 동참하지 못하더라도 이들의 불행을 나의 불행으로 여겨 돕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리고 평소에도 소외와 가난속에 살아가는 어려운 형제들에게 이번처럼 사랑의 손길을 보내어 마음에 맺힌 한을 풀어 주어야 하겠다.
이번에 보여준 국민들의 정성과 휴가철인데도 절제된 피서행렬의 모습같은 갸륵함으로….
차제에 우리 교회당국(각 교구)에 한말씀 드리고 싶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급작스런 재난으로 시급히 도와주어야 할 경우 교구의 지시를 받아 그때서야 모금함으로써 신속성과 사회성을 잃었고 효과도 크게 약화된것이 사실이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제도적이라고 하지만 제도때문에 시급할 때까지도 이런 제도에 억매여야하는가 말이다. 이런 제도적 관행은 실제로 교회가 불우이웃돕기에 동참하고 앞장서면서도 신속성과 사회성의 결여로 인해, 우리 교회는 말로는 형제애를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동참하지 않는것처럼 외부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했거니와 실제 참여에 있어서도 소극적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구체성이 있을때, 참혹한 현실을 직접이든 간접이든 체험할때 마음이 움직이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교구에서는 재난의 실태를 빨리 파악하여 각 본당에서 도와주어야할 피해본당을 알려주고, 아니면 지구별로라도 재해본당을 도와줄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로 끝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구→본당→교구→재해지라는 번잡스러움도 없을 것이고 신속성과 사회성도 갖게될 뿐아니라 해당본당에 따라 현지를 가본다는가 독려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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