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에제키엘은 하느님을 가리켜『타협을 모르는 자비이서며, 냉혹할 줄 모르는 정의』라고 표현했다.
이 예언자의 지적은 하느님이 만사를 외롭게, 정의에 입각해 처결하시면서도 그 속에는 어김없이 자비가 내포돼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구ㆍ신약성서 전반에 나타나있으며 구세사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를 역력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구약에서 사울왕은「놉」의 사제 아히멜텍이 다윗을 도와 그를 피신시켜 주었다는 이유로 그와 집안, 동료사제들을 칼로 쳐 죽였다.
그뿐 아니라 사제들의 성읍인「놉」의 주민들까지 남자와 여자, 아이들과 젖먹이, 소, 나귀, 양까지 몰살시켰다.
그 후 다윗 왕정시대에 3년이나 기근이 들어 다윗 왕이 그 이유를 물은즉 야훼께서는『사울과 그의 가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라고 일러주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사울과 그 가문의 살인죄를 공의(公義)로서 처벌하시되 그 안에는 자비가 깃들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자비란 기근을 3년으로 한정하고 있는데서 볼 수 있다.
만일 살인의 대죄를 정의로만 다스려 기근을 10년, 20년으로 늘렸다면 그때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신약에 있어「무자비한 종의비유」는 하느님의자비와 정의가 얼마나 극명히 나타나있는가를 보여준다.
어떤 왕에게 큰돈을 빚진 사람이 같을 능력이 없게 되자 왕은『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고 했다. 그러자 채무자는 왕에게 엎드려 절하며『조금만 참아주시면 다 갚아드리겠다』고 애걸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왕은 그를 측은히 여겨 빚을 탕감해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 채무자는 나가서 자기에게 작은 돈을 빚진 동료를 만나 멱살을 잡으며 빚을 갚으라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가 엎드려『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 . 그러나 그는 동료의 애원을 뿌리치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어두었다.
이를 지켜본 종들이 왕에게 가서 사실대로 고하자 왕은 분노하여 채무자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말하기를『몹쓸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할 것이 아니냐?』하면서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여기서도 우리는 큰 빚을 탕감해주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배반한자에 가하는 그분의 정의를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성서와 구세사상에 나타난 하느님의 정의는 중세에 들어와 하나의 덕(德)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의를『확고부동한 의지로 각자에게 그의 권리를 돌려주는』하나의 덕으로 규정했다.
요셉 회프너 추기경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정의는 네 개의 기본 덕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여러 덕이 그것을 마치 돌쩌귀로 삼아 움직이는 하나의 주덕(主德)』이라고 표현했다.
교황 삐오 12세는 정의와 자비(곧 사랑)에 대해『양자는 같은 신(神)의ㆍ정신의 방사(放射)이며 인간정신의 존엄에 대한 공고(公告)요 보증이다. 양자는 서로 보완하며 협력하고, 생존을 서로 강화하고 의지하며 화해와 평화를 향한 길에서 서로 제휴한다.』고 했다.
「노동헌장 40주년」에서는 정의에 대해『아무리 그것이 충실하게 지켜질지라도…사회 불화의 분쟁요소를 이 세상에서 제거할 뿐 마음을 내적으로 결합시켜주지는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현금 우리 사회는 바로 이 정의문제를 놓고 심각한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소위「5공비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의견과 주장들이 각양으로 흩어져있다
5공화국이 폭력 등을 정의란 칼날을 세워 갈기갈기 오려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5共의 책임자였던 전두환씨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칼날은 여전히 서슬이 시퍼런 채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그의 사죄, 재산헌납, 은둔의 행각이 정의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지 모른다. 그만큼 불법과 불의와 부정을 창출하고 행사한전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면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자비와 정의를 겸비하신 하느님의 처결이 자못 궁금해진다. 하느님께서는 과연 전두환씨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 주변의 핵심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리실 것인지.
그리고 더 이상 그의 죄과를 묻지 말고 용서해주자는 사람들과, 용서는 해주되 죄상은 낱낱이 파헤쳐야한다는 사람들과, 모든 죄를 숨김없이 찾아내 처벌해야한다는 백성의 엇갈린 목소리 중 하느님은 과연 어느 편이 옳다고 결정하실지.
그리고 당리당략을 밑바닥에 깔고 대중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일부정치인들과, 국민감정을 누그려 뜨려 화합과 일치를 꾀하기보다는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하도록 하는 일부 못된 언론들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지.
아울러 세상구원을 위해 왕직ㆍ예언직ㆍ사제직을 실천하는데 몸 바친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사태의 추이만을 지켜보고, 말하기를 주저하고 행동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대해 하느님은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해 하느님은 속 시원한 대답을 앓고 계시니, 모두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고 답답하기만 할뿐이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들은 분명해졌다. 그것은 하느님의 정의는 자비와 뗄 수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정의와 사랑은『화해와 평화를 향한 길에서』서로 손을 잡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내적인 신념의 결합은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우리가 처한 난국의 해결하는데 이러한 사실들이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