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라고 기억된다. 지겨운 학기말시험을 끝나고 시작된 겨울방학은 내게 또 다른 기쁨으로 설레이게 했다. 내가 삼촌이 될 거라는 소식과 함께 온가족은 어린아이의 옷가지며, 목욕통, 우유병, 기저귀감등을 준비하느라 부산했기 때문이다.
한 어린아이의 탄생으로 나는 삼촌으로 변화되고, 나의 부모님은 할아버지ㆍ할머니가 되고, 그리고 나에겐 항상 형으로만 여겨졌던 사람이 아버지가 된다는 느낌은 태어날 아기의 얼굴모습과 이목구비를 상상해 보는 기쁨과 함께 뿌듯한 책임감을 느끼게 했었다.
새삼스럽게 오래전의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은 대림절과 함께「기다림」의 체험이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키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이는 기다릴 수 없는 것이고, 희망은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한곳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읽은 것인데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많은 유대인들 가운데는 너무도 힘든 노동과 환경 때문에 쉽게도 사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가 살아야만 될 이유와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예컨대, 수용소 밖에서 자기아내와 자식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든지, 자기가 체험한 수용소의 기상천외한 사실들을 살아나가서 증언해야 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은-그것이 목숨을 결과적으로 지탱하게 했던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어린 아기로 탄생하시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은 세말에 오실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것만큼 신앙인들에겐 크나큰 희망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느님의 풍요를 나누어 누리고, 하느님의 기쁨과 평화로 나를 채우고, 죄 많은 내 존재가 하느님을 닮기를 희망하는 것이며, 완성과 자아실현의 뿌리 깊은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고, 신앙의 신비를 체험해나가는 환희를 희망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우들에게 나눠줄 성체대회 책자와 달려 성사표와 찰고지를 차에 실으면서 그리스도를 희망하고 그리스도를 닮기로 결단을 내리는 교회를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의 고백을 들으면서 더욱 나 자신의 부끄러움과 공허를 체험하고 더욱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매달릴 내 모습이, 마치 절망에 섰을 때 비로써 희망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는 것과 비슷해서 좋다.
허물 많은 본당신부에게 부끄러워 살며시 쥐어주는 할머니의 담배 갑 속에 담겨진 성탄에 대한 희망 안에서 나는 혼자 되뇌인다.
『어쨋거나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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