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3개의 가톨릭계 병원이 파업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그중 2개 병원은 일단락되었고 나머지 한 개 병원은 이달 13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있다. 먼저 8월 17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부산 성분도병원은 운영권자인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또 수녀회가 병원운영권을 부산교구에 헌납함으로써 파업은 종결됐으나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 곧 성분도병원의 노사분규는 노ㆍ사당사간의 직접합의를 끝내 도출해 내지 못하고 병원을 교구로 넘기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노ㆍ사 쌍방이 불명예와 불행의 결과를 빚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지난 11월 19일부터 노사양측이 한치의 양보도 불허할 뜻을 밝히며 파업을 강행한 수원 성빈센트병원은 쌍방이 인내와 상호이해의 바탕에서 대화와 타협을 계속한 결과 파업 20여일 만에 상호합의에 도달, 12월 13일부터 정상업무를 재개했다고 한다. 파업기간동안 노사양측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누적된 불신과 불화를 말끔히 청산하고 새 출발을 약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닐수 없다.
이달 13일부터 노조측이 70개항의 요구조건을 낼 걸로 1백일을 목표로 파업을 진행 중인 대구파티마병원은 그 타결이 어느 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어째든 올 들어 3개의 가톨릭계 병원에서 파업사태가 발생한 것은 부끄럽고 창피스런 일임엔 틀림이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파업이 국내 거의 모든 사업체들이 겪고 있는 다반사로써 교회병원들의 파업도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견해는 다르다.
그 이유는 가톨릭계 병원들이 원래의 설립취지대로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병원을 운영해오고 있는가를 먼저 묻고 싶다.
그것은 노사분규자체가 사용주에 대한 근로자들의 불평ㆍ불만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왜 평상시에 말썽의 소지를 해소하지 못했는가하는 책임추궁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건전한 이성을 가진 근로자들의 요구는 대략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대우와 급료를 비롯한 각종 수당의 지급 및 인상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가톨릭계 병원들이 그 종사자들에 대해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병원측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전적인 처우문제는 적어도 사회일반 병원들의 수준이 되던가 아니면 그 이상으로 개선해주려는 노력과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근로자들 편에서는 턱없이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스스로 자제하고 피해야 할 것이다.
병원이 처한 상황이 급료와 여러 가지 수당을 단 시일 내 한꺼번에 상향 조정할 수 없는 어려운 처지임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근로자들이 자기네 요구만을 내세운다면 그런 근로자들에게는 일고의 동정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급료나 제수당의 수준이 타 병원들에 비교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더욱 개선해 나가겠다는 사용자측의 약속을 거부하는 근로자들이라면 누구의 지원도, 지지도 받기 어려움 것이다.
혹시나 가톨릭계 병원을 운영하는 사용자측이 실질적인 수입은 가려둔 채 무료진료나 영세민들의 진료수가 많아 수입이 적다거나, 계속 불어나는 환자 수에 대비해 시설을 확충하고 최신 의료자재들을 도입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종사자들에게 급료와 수당들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사용자측이 질수밖에 없다.
결국 노사분규는 사용자와 근로자 양쪽이 자기편의 입장만을 고수하려하고 자기편의 욕심만을 고집하는데서 출발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 해결은 근본적으로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노사양편의 이러한 상호이해와 양보가 파업이라는 극한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자율적으로 해결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말에 비온 뒤에 땅이 더욱 단단해지고 싸움 뒤에 더욱 친해진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사양편이 갈등과 불화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피해를 입는 선의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인간의 생명을 취급하는 병원이 파업으로 인해 입원중인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하고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이 가까운 병원을 두고 먼 거리의 병원을 찾아가야하는 불편과 위험을 무책임하게 방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상기한 이유들 외에도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가톨릭교회의 이름을 내걸고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베푼 치유의 은혜를 모범으로 실천하려는, 교회이름의 병원이라는 점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인간구원이라는 대명제하에 펼치고 있는 각종사업들이 그 본래의 정신과 실천의지를 상실했다면 그 사업은 하루속히 끝내야 할 것이다. 세인들의 눈에 교회의 사업체들이 영리를 추구하고 나아가 더 많은 불획득 하려는 사회기업체들과 다를 바 없이 처신한다고 비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교회의 이름을 내걸로 결코 돈벌이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실지로는 그렇지 않는데 그런식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면, 그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일로인해 교회전체가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악표양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현재로서 3개의 가톨릭계병원에 떨어진 파업의 불뚱이 언제 또 다른 곳에 옮겨 불을지 알 수 없다. 기왕 떨어진 불을 강 건너편에서 구경하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둘러 집안을 단속하고 불씨를 제거하는 슬기와 용단이 절박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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