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마음으로부터 가장 존경해 온 석계(石溪) 요한 회장님의 명복을 빌면서 이글을 올립니다.
타계는 우리 인간 모두가 가야만 할 영원한 길이지만 회장님은 양심의 징표이셨으며 우리 교회의 한줄기의 샘물처럼 흐르는 찬란한 큰 별이셨기에 인생 무상함을 더욱 크게 하며 많은 아쉬움과 슬픔을 우리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회장님 당신의 겸손과 사양지심의 유지에 따라 평협장(平協葬)을 하지 않고 조용한 가족장을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라도 여러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폐가되지 않겠다는,항상 마음을 비우고 살아오신 당신의 뜻은 우리 모두 머리 숙여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가시는 날은 당신의 맑고 온후한 마음처럼 겨울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봄날처럼 따뜻하였습니다. 저녁 잘 드시고 고통 하나 없이 조용히 가신 사실은 바로 주님 대전에 가신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회장님 80여 한평생을 회고해 보면 우여곡절의 풍파도 많았고 희비와 애환의 엇갈림도 적지 않았습니다.
경북 예천 중농의 가정에서 1907년 9남2녀 맏아들로 태어나신 회장님은 소시 때부터「세 살적 버릇,여든까지 간다.」는 말과 같이 책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책벌레의 습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12세에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완료하셨으며 대구농림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외전신)문과에 이어 다시법과를 선택하여 재학 중에 고등고시 행정과를 패스한 영재이셨습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식으로 모든 일은 속전속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0년이라는 세월은 일제의 관계에 몸담고 계셨지만 식민지 정책의 차별대우에 자중자애 하셨으며,가시는 곳마다 기발한 행정의 묘를 살리시어 민족혼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8ㆍ15해방을 맞이하여『민족과 국가사이에는 영원한 이웃도 영원한 적도 없음』을 상기시키시어 가해와 보복을 하지 않은 사실은 회장님의 깊은 관용과 선량한 마음가짐의 한 표본이셨습니다. 해방 후의 어지러운 정국,6ㆍ25사변 휴전과 더불어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시어 향후10년이라는 파란만장한 정치의 소용돌이 속의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사사오입개헌 파동과 자유당 비정에 염증을 느껴 국가 대의(大義)를 살리시어 민주당 창당에 앞장서셨습니다.
제5대 국회의원 당선,내각책임제 하의 국방부장관 및 내무부장관,그리고 당시 국방부 장관,그 당시 계속되는 학생데모와 민주당 신ㆍ구파의갈등 등을 틈타서 집권당의 무능과 부패를 구실로 5ㆍ16군사 쿠테타가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였다는 죄책감과 책임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중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국방부장관이었던 자신에게 있다고 술회하신 솔직 담백한 당신의 말씀에 우리는 머리를 숙일수 밖에 없습니다. 책임을 모르고 당리당책만 주장하는 오늘날의 많은 정치인과 비교할 때 당신의 뜻은 얼마나 고매하신지요. 정치에서 손을 뗀 후 회장님은 하느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회장님의 일생의 은인이시고 영세대부이신 서울대교구의 전교 회장이신 조원환 선생님(가톨릭의대 조규상 원장 선친)의 전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셨습니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에 무릎을 꿇으신지 어언 20수년. 회장님은 당신 속에 꽉 차 넘치는 그리스도를 남에게 주지 않으며 못 견딜 정도로 여생을 전교에 바치셨습니다. 회장님은 전교에 형용할 수 없는 희열과 감사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생을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살고 그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전파하는 일에만 전심하기로 결심하시어 교리강좌로부터 시작하시어 가톨릭 교리연구소,혼인상담,한국 꾸르실료를 개척하셨습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초대 회장으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의「평신도 사도직 교령」에 제시되어 있는 평신도사도직의 사명,그리고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 등 교회안에 평신도가 설 땅을 명확히 정립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MㆍBㆍW (그리스도 공동체 묵상회)전국추진회장으로서 국제운동인「보다 나은세계를 위한」교회쇄신 운동에도 앞장서셨습니다. 1만8천여장에 이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 해설전집 전6권을 3년에 걸쳐 번역한 대작을 남기셨습니다.
회장님의 근면하시고 부지런하신 성품 때문에『다음은 또 무엇을 할 것인가』항상 그것이 고민이고 욕심이셨습니다.
그리하여 명동성당에 교리상담실이란 간판을 걸고 신앙문제에 관한 상담을 하신 것이 인생의 마지막사업으로 비가 오나 눈이오나 80노구로 명동성당의 언덕길을 오르내리시던 그 모습을 이제 다시는 뵈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장님,관리 생활 10년ㆍ정치생활 10년,그리고 20년의 신앙생활동안 남기고 가신 그 업적과 유지는 아무리 겸손의 미덕으로 사양하시더라도 우리사회에 귀감이 될 것이며 자기성화에 만전을 기하였으며,복음 전파에 많은 열매를 맺으셨으며 사랑의 실천에 최선을 다하셨던 산증인으로서 우리교회의 역사에 빛나는 거물이십니다.
끝으로,남은 저희들은 당신의 빛나는 유지를 받들어 손에 손잡고 회장님이 먼저 가계시는 천당가는 길에 금자탑을 쌓아 올리겠습니다.
석계 요한 회장님,부디 주님의 품안에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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