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을 한채 차를 몰고 단국대학 앞 고가차도를 중간쯤 갔을때의 일이다. 앞 차가 갑자기 서는데 나는 그 순간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그 차에 그만 부딪히고 말았다. 저 앞에서 3중 충돌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모든 차가 서는데 나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고가 차도 위라서 잠깐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 차는 앞이 많이 망가져 있었고 수증기가 뭉실뭉실 오르고 있었다.
내가 받아버린 앞의 포니차 자가운전자는 즉시 내려서 차가 얼마나 파손됐는지 살피고는 차를 따라 오라고 한다. 얼핏보기에 뒷 깜박이등 한쪽이 망가진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뭐가 더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또 어떤 운전사는 시비를 걸고 시간을 질질 끄는 수도 있기때문에 첫 사고를 낸 내 마음은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둘다 길옆으로 차를 세워놓고 나서 나는 우선 『대단히 죄송하게 됐읍니다』 하면서 정중히 사과를 하고 그 차를 보니 뒷유리창에 M·E마크가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반가운 김에 『어, M·E가족이시군요』하였더니, 그분은 힐끗 내차에 붙어있는 200주년 마크를 보고는 『교우시네요』한다. 긴장의 순간이 갑자기 누그러졌다.
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예, 사실 저는 양재동 본당의 송신부입니다』하니 그분은 꾸벅 절을 하면서 『아, 신부님이세요? 저는 동대문본당 신자입니다』라고 한다. 『어쟀든 참 미안하게 됐읍니다. 차가 망가진거 다 보상해 드리겠읍니다』하니까 뜻밖에도 『신부님 차에 받혀서 오히려 영광입니다. 제차는 별로 망가진 데도 없는데 신부님 차는 많이 망가졌네요』하면서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냥 가고, 내 차는 보험처리로 18만원을 들여 깨끗이 수리되었다.
며칠후 한 양재동 신자가 와서 『얼마 전에 제가 아는 동대문 신자 차와 신부님차가 접촉 사고가 있었다면서요? 그분이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래요』한다.
내가 그 차를 들이받았는데 「영광」은 뭐고 「고맙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몇년이 지나고서 바로 며칠전 한달간의 사제피정을 마치고, 동대문 본당신부를 모시러 온 차에 편승하고 수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있다. 신호 대기중인데 앞차에 M·E마크가 붙었길래 내가 『어, 저기도 ME가족이네, 차타고 가다가 M·E마크, 200주년 마크, 꾸르실료마크를 보면 반갑더라』고 말했더니, 차에 탔던 사람들이 별안간 깔깔 웃는다. 너무 의아해서 왜들 웃느냐고 나는 물었다. 동대문신부는 『이 차 운전하는 분과 신부님간에 무슨 일 있었던 거 기억 안나시죠?』하는 것이었다. 『아, 몇년전에 내가 받은 그 차 운전자? 왜 진작 얘기 안해줬어?』
나만 몰랐지 이분들은 내가 탈때 이미알고 있으면서 내내 딴 얘기만 하면서 왔던 것이다.
그분은 동대문 본당 사목위원회 총무 윤프란치스꼬라고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